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 -37
2018/04/26 17:45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현실적 욕망 추구하는 기복신앙에 눈 멀면 천국의 방향 상실
12-1.jpg
 
37. 기복신앙으로 천국의 방향을 잃은 한국교회

어느 지역이나 국가에 새로운 종교가 들어가면, 이전부터 이미 토착화 되어 있는 토속신앙과 융합을 이루어 본래의 종교 이념이나 형태와는 색깔이 다른 제 3의 종교가 만들어진다.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인간 사회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의 기독교 역시 한민족의 토속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샤머니즘의 기복주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은 것이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 기독교가 일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이유 중의 하나도, 기독교 본래의 정신인 나눔과 베풂의 정신을 적극적으로 구현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인 기복신앙이 발전되고 확산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의 일차적인 책임은 물론 신앙인들 각자에게 있는 것이지만,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파악하여 성도들이 성경적으로 올바른 신앙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할 사명이 있는 목사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배양된 샤머니즘적 기독교
샤머니즘이란 그 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먼 옛날부터 인간의 삶 속에 깊이 자리를 잡고 내려 온 원시종교의 한 형태이다. 심성이 연약하고 대자연의 위력 앞에 무기력한 인간들이 자신의 힘이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나 사물에 대하여, 어디엔가 존재할 것 같은 절대신(神)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종의 신앙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샤머니즘 신앙은 주로 현실적인 삶에서 나타나는 위험이나 불안이나 재난 등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더 나아가 삶에 필요한 것들을 신의 손길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생존의 본능과 관련을 갖는다.
반면, 기독교는 매우 지성적이고 이성적이고 치밀한 질서와 이론과 원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종교이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경배하는 대상인 ‘하나님’은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막연한 신(神)이 아니라, 구약성서를 통해서 계시된 구체화된 존재이다. 하나님은 자신에 대하여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출 34:6)이라고 선언하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경우에 다양한 형태로 인간들에게 현현(顯現)하여 자신의 뜻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교제하고 소통하면서 궁극적인 구원의 도(道)와 현실적인 삶의 원리를 제시한 지성적 존재이다. 그리고 현재의 생활 속에서 얻어지는 복에 대하여 언급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하신 현실적인 복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들이 주문을 외우듯이 반복하여 간구하면 그 마음의 간절함이나 성의를 보고 내려주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얻어지는 결과적인 선물이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1~5).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의 원리가 이렇게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언약의 말씀을 잘 깨닫고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면서 그 열매로 나타나는 올바른 행실과 성품의 변화를 가르치지 않고, 당장 눈에 보이는 물질적 번영과 복 받는 것을 기독교 신앙의 본질인 것처럼 강조하므로 샤머니즘적 기복 신앙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들어와 넓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기독교회가 급속하게 성장하게 된 것도 오랜 세월동안 한국인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던 샤머니즘 신앙과 무관하지 않다. 샤머니즘에서 사용하는 ‘주문’(呪文)이 기독교의 ‘기도’와 접목되어 샤머니즘적 기독교로 변질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말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기도의 기능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소통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기도를 통해서 성도들이 자신의 소원을 아뢰는 것은 당연하다. 예수께서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요 14:13). 이 성경절에서 “내 이름으로”라고 한 것은 “예수님의 권위 혹은 그분의 공로를 의지하여”라는 의미와 함께 “그의 계명을 지키며 그분의 뜻대로” 구한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며 하나님께 구하는 내용이 하나님의 뜻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예수께서 사람의 의식주에 대하여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마태복음 6장의 내용도 그 핵심에는 33절이 자리를 잡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기독교인들이 기도할 때에 먼저 구해야 할 “그의 나라와 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왕국과 그 나라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법도와 기준’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성경절의 의미는, 먼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믿음을 가지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면 인간사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줄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는 뜻이다. 무조건 아무 것이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이기적으로 구하라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복은 현재적 삶에 필요한 물질적 복이 아니라 ‘영생’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복신앙에서 복음신앙으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현실 생활에서 복을 받는 것도 아니고 병이 낫는 것도 아니고 봉사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것들은 모두 참된 복음의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복음의 진수는 죄인이 예수의 십자가 은혜와 공로로 죄를 용서받고 죄의 결과인 사망을 극복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로 주어진 구원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께서 명하신 말씀에 순종하므로 복을 누리는 것이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요청하시는 계명들은 사람의 건강과 행복과 평안과 구원을 위하여 꼭 필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 자체가 복이 되는 것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죽음의 문턱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을 믿고 우상숭배를 거부하였다. 그 다음에 그들이 왕에게 한 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하나님이 우리를 살려주지 않으실지라도) 왕이 세운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겠다는 이 단호한 결심은,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모든 백성에게 필요한 절대 믿음이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5장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며 추구하는 복은 너무나도 물질적이며 이기적이고 현실적이다. 심지어는 복음 전도와 성품을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능력으로 내려주신 성령의 선물도, 치유의 은사, 방언의 은사, 귀신 쫓는 은사 등 왜곡된 방향으로 치우쳐 있어, 정작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야 하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5:22, 23)와 같은 은사는 희귀하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의 도래를 갈망하던 유대인들이 로마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현실적인 구원자를 찾다가 그렇게도 애타게 기다리던 참 메시야를 거절하였다. 신약에 예언된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기독교인들이 현실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기복 신앙에 눈이 멀어 천국의 방향을 상실하고 예수의 재림을 맞이하는 일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pnnews@empas.com
교회연합신문(www.ecumenicalpress.co.kr) -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교회연합신문 (http://www.ecumenicalpress.co.kr)  |  발행인 : 강춘오  |  설립일:1991년 11월 16일
    | 사업자:206-19-64905  | 03127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16길 73-10  |  대표전화 : 02-747-1490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All right reserved.
    교회연합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