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103
2018/11/16 16:5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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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하는 아브라함 부부(창 16: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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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는 “갑질”이나 “미투”라는 말이 널리 쓰여지고 있다. 가진 자, 높은 자리에 앉은 자, 강한 자들이 자기들의 권위와 부와 힘을 이용하여  못 가진 자, 낮은 자리에 있는 자, 약한 자를 이용하고, 짓밟고, 수탈하고, 상처주고, 죽이기까지 하는 자들을 규탄하고 부조리한 사회 제도를 개혁하자고 외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역사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서라도 있었던 일이고, 우리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박힌 현상이라 이를 고치는 일은 하루 이틀 사이에, 한 두 사람의 힘을 통하여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근본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성경에서 찾아보았으면 한다.
갑질은 성경에도 많이 언급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브라함은 흉년을 피하여 이집트에 내려갔다가 가나안으로 돌아온 후 부자가 되었다. 바로왕이 많은 선물을 주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에게는 상속자가 없었다. 그의 하인 엘리에셀을 입양하는 문제를 고려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찾아 오셔서 그의 몸에서 날 자가가 그의 상속자가 될 것임을 말씀하시고, 그를 통하여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손과 가나안의 넓고 넓은 땅을 그의 후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이를 보증하는 “횃불언약”을 맺으셨다. 아브라함이 쪼갠 짐승들 사이로 하나님께서 지나가심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을 담보하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지킬 것을 약조하신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져 버렸다. 당대의 메소포타미아나 가나안 땅의 풍습을 따라 아내 사라가 씨받이로 정해준 이집트 출신 몸종 하갈과 동침하였다. 하갈은 임신하였다. 하갈은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고 그의 여주인 사래를 무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꼴을 두고 볼 수 없던 사래는 우선 아브라함에게 이 사실을 불평했다. 아브라함은 “보시오 당신의 여종은 당신 손 안에 있으니 당신 눈에 좋을 대로 그 여자에게 하시오”라고 대답하였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아무런 책임도 관계도 없는 것처럼, 남의 일을 말하듯이 이 문제에서 물러 선 것이다. 그래서 사래는 하갈을 학대하기 시작하였고, 하갈은 학대를 참을 수 없어 집에서 도망쳐 나와 광야를 해매고 다니게 된 것이다. 성경에 사래가 하갈을 어떻게 학대하였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도망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 견디기가 힘든 고통과 아픔을 느꼈기 때문에 아이를 가진 여자가 집을 뛰쳐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갈의 인생은 참으로 불쌍하기 그지없다. 그는 이집트에서 바로의 종이었음에 틀림없다. 왕 바로가 아브라함에게 그의 허물에 대한 변상으로 재물을 챙겨 주었을 때에 아마도 가축들과 함께 묻혀와 아브라함의 가속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 여자는 부모들을 떠나 멀리 이방에 끌려와서 아브라함의 종노릇을 하고 살다가 아브라함의 씨받이가 된 것이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도, 반항할 여지도 없는 짐승만도 못한 처지가 된 것이다. 요사이 말로 인권이니 자유이니 선택이니 하며 자기주장을 할 틈이 없다. 동물 취급을 받는 것이다. 그래도 아브라함의 피붙이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자기에게는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그마저 날려버린 것이다. 이제는 살기 위한 탈출을 감행한 것이다.
한편, 사래의 갑질성 학대는 다분이 보복성이 있고, 가정의 질서를 세우기 위한 의도가 있어서 그런대로 이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아브라함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아주 비겁하고 무책임하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자기가 안고 자고, 자가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인데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아내에게 알아서 처리라고 말한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시류를 따라 상속자를 얻고자 했던 아브라함의 가정에 검은 풍파가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에게는 사실상 상생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허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때 여호와의 천사가 하갈에게 나타났다.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지 않으시고 그의 천사를 보내신 것이다. 이는 분명 횃불 언약을 믿지 못한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불편한 심기를 보여주는 면이라고 할 수 있다. 출애굽 때에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가지 않고, 그의 천사를 대신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신 경우와 유사하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언약을 저버린 아브라함 부부를 보시고 그의 마음이 편하실 리가 없다. 그래서 그 대신 그의 천사를 보내신 이유가 될 것이다. 여호와의 천사는 하갈에게 복귀 명령을 내리신다. “네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 여자의 손아래에 복종하여라.”(16:9)고 말씀하신 것이다.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문제는 안보고 회피하고 도망간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미해결로 남는 것이다. 하갈에게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라고 명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식을 낳고 거기서 다시 출발하라는 말씀이다. 여호와의 천사는 그가 앞으로 아들을 낳을 것을 예고하시고, 그의 이름을 이스마엘로 부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마엘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God hears)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하갈의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그의 생명을 살려주셨기에 그 아들 이름을 이스마엘로 지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짓밟히고 신음하고 죽어가는 인생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의 앞날에 대해서 그가 들나귀와 같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의 어미 하갈은 비록 노예로 자유 없이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지만 그의 아들에게는 자유를 약속하신 것이다. 아마도 어느 누구에게 구속되지 않는 들나귀와 같은 자유인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동장치가 없는 한 사람의 자유는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줄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여러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고, 별로 좋은 관계를 맺고 살지는 못할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이 모자를 아브라함 부부의 갑질로부터 구출하시고 살리는 분이시다.
하갈은 자기를 살려주신 하나님이 감사했다. 세상에서 자기의 가련한 신세를 보고 계신 하나님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감격스러웠다 그래서 자기의 형편과 처지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를 살피시고 살려주신 하나님을 “엘로이”이시다 라고 말한다. “엘로이” 는 “나를 보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가 여호와의 천사를 만났던 그 우물에 이름을 붙였는데, “브엘 라하이 엘로이”(Beer-lahai-El-roi), 즉 “나를 보시는 살아계신 자의 우물”(The well of the living one who sees me)이다. 하갈이 만난 하나님은 들으시고, 보시고 살리는 분이었다.
하갈은 세상에서 가장 짓밟히고 핍박당하고 상처받은 비참한 인생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도 살 길을 열어 주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심지어 자기가 살기 위해 자기의 아내도 누이라고 속이고, 자기의 자식을 임신한 여자를 자기 입장이 난처하니까 모른 체하는 비굴한 사람이다. 이스마엘은 아브람에게 계속 그의 약속의 아들, 이삭에 이어 대대로 그의 후손들에게 옆구리의 가시가 되었다. 사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늙어가는 아내로서 당시의 풍습을 따라 씨받이를 통해서라도 남편의 대를 잇게 해주려다가 결국은 하갈을 학대하고 갑질하는 여인이 되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무시하고 세상의 풍속을 따라 자식을 얻으려고 몸부림치는 이 가정은 어떻게 보면 바람 앞에 촛불과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천사가 찾아오시어 이 문제를 수습하신다. 하나님은 하갈을 구출하시고, 15장에 이어 17장에서 할레를 통하여 피를 흘리게 하시고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종결 완성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의 한 많은 인생살이를 보고 계시는 분이시다. 엘로이 하나님은 이 고난 받고, 핍박당하고, 도망가는 것만 보시는 분이 아니다.  인간들의 모든 불의와 고난을 살펴보시는 분이시다. 요셉은 자신을 유혹하는 주인의 처 보디발의 유혹을 물리치며 “내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 득죄하리이까?”라고 말한다. 그의 주인, 보디발에게 득죄하리이까 라고 말하지 않는다.  미성년자에 대한 세도가의 아내가 부리는 성폭력 갑질 시도를 “코람 데오”(하나님 앞에서)의 믿음과 정신으로 이겨낸다. 하나님께서 “엘로이”이시니 우리 인생들은 요셉처럼 “코람 데오”의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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