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미갈의 부부싸움과 내면 치유/ 사무엘하 6:16~23
2020/01/06 13:4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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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갈등을 하나님의 징계로 봄은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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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전성기에 이르렀을 때 의미 있게 행한 사건이 언약궤를 다윗성에 옮겨 놓은 일이었다. 그는 이름 없는 시골 목동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깊은 감격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이스라엘 통치의 중심으로 삼고자 언약궤를 수도 예루살렘에 두려고 했다.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이동하게 하면서 얼마나 기쁘고 행복해 했을까?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는 다윗의 기쁨은 이루 말로다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윗의 생애에서 그 누구로부터도 그런 기쁨과 행복을 얻지 못하였다. 그야말로 최고로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잃어버린 영광의 법궤를 이동하는 오벳에돔에서 다윗성까지는 무려 24km에 이른다.
법궤를 옮기려는 다윗의 열정은 과히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은혜의식이 얼마나 뜨거웠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언약궤를 운반하는 다윗은 너무나 기쁘고 즐거워서 왕복을 벗고 예배자로 베 에봇을 입고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겁게 환호하고 나팔을 불며 궤를 메어왔다.

Ⅰ. 다윗과 미갈 부부의 충돌
 
정신없이 춤을 추던 다윗의 옷이 흘러내리고 속살이 드러났다. 언약궤가 다윗성으로 들어 올 때 그 광경을 아내 미갈이 왕궁의 창에서 내려다 보았다. 그녀는 그런 다윗을 보면서 마음으로 업신(despised, 경멸,멸시)여겼다(삼하 6:16).
이런 미갈의 업신여김이 집에 들어온 다윗과 무서운 싸움을 일으키고 부부는 결별하게 된다. 이러한 미갈과 다윗의 부부 싸움을 보여주는 의도가 무엇일까?
다윗이 집에 돌아 와서는 자신이 찬양받는 왕이 아니라 아내와 심각한 문제가 있는 평범한 남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데 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인물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름을 받을 정도로 경건한 왕인데도 부부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부부사이에는 인간세상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갈등과 충돌에 대해 예외가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다윗은 언약궤를 장막에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떡과 고기 건포도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자기 가족에게 축복하러 집으로 돌아왔다. 들어오는 남편 다윗을 보고 미갈이 경멸하는 말을 한다.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the vain fellow, 천박하고 상스러운)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삼하 6:20).
쉬운 번역을 참고한다. “오늘 이스라엘의 임금님이 건달패들이 맨살을 드러내고 춤을 추듯이 신하들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몸을 드러내며 춤을 추셨으니 임금님의 체통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표준 새번역).
인생 최고의 충만한 기쁨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다윗은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아픔을 겪는다. 아내 미갈의 비난과 질책이었다. 다윗이 집안에 들어오지 못한채 출입구에서 미갈의 비난을 듣자 다윗은 매우 불쾌하였다. 언약궤를 메고 온 기쁨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도 역시 아내 미갈에게 심히 불쾌한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원래 다윗이 미갈에게 가졌던 애정은 이랬다. “미갈이 내 아내의 자리에 없다면 왕관도 없다”(삼하 3:13)3)3).
그리고 다윗은 자신을 떠나 다른 남자하고 동거하여 부부관계로 살고 있었던 미갈에 대해 비난하거나 문제를 삼지 않았다. 낯선 자의 품에 안기는 부정한 짓에 대해(렘3:1) 이미 용서했었다.
그런데 성경은 미갈에 대한 묘사를 다윗의 아내라고 하지 않고 ‘사울의 딸 미갈’(삼하6:16, 20, 23)이라고 세 차례나 언급한다. 이를 주석가들은 미갈이 다윗의 아내로서 행동하지 않고 다윗의 대적으로서, 참으로 사울 집안의 사람으로 행동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미 미갈은 다윗의 첫 번째 아내였다. 그런데 사울왕의 살해 위협을 느낀 다윗은 혼자 도피하였고, 미갈은 아버지 사울의 집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버지에 의해서 발디엘이란 남자에게 재혼해서 살았다(삼하3:14-16). 그러나 다윗이 전(全)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곧 바로 다윗 성으로 불려 왔다.
그 동안 다윗은 여러 여자들과 이미 혼인한 상태였는데 다시 미갈과의 부부관계를 회복하려 한 것은 어떤 의도였을까?
단순히 미갈을 사랑하는데 있었을까? 다윗은 미갈과 헤어진 이래로 여러 여자들을 아내로 삼았었다. 그런 그에게 또 다시 여자의 사랑이 필요했을까?
여기에는 다윗이 자신의 왕권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윗은 아직도 세력이 만만찮은 사울 왕가에 대해서 사울왕의 딸이 자신의 왕비로 존재한다면 자신의 왕권에 대해 사울 왕가와의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보여 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다분히 정치적인 생각이 엿보인다
다윗은 미갈의 비난을 받자 화가 났다. 조금도 생각할 겨를이 없이 그도 미갈에게 비난으로 응사하였다. 감정 대 감정의 충돌은 큰 화를 자초한다. 여기서는 평소에 다윗의 경건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 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 받으리라”(삼하 6:21~22).
그 후 다윗은 미갈과 함께 하지 않았고 미갈은 또한 평생 다윗의 후손을 얻지 못했다. 다윗이 사울집안과의 단절을 의도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주석가 메튜헨리(Matthew Henry)는 하나님을 영예롭게 한 다윗을 대적하고 비난한 미갈에 대해 하나님이 벌하셨고 그 후로 자식이 없게 하셨다고 설명한다.
이상으로 다윗과 미갈의 부부싸움에 대한 성경본문을 상세하게 살펴보았다. 그런데 두 사람의 부부싸움을 단순히 경건한 다윗과 대적한 미갈의 잘못으로 결론짓기는 아쉽다. 두 사람의 내면 속에 숨겨져 있는 상처라든지 쓴 뿌리가 작용한 부분은 없을까?

부부갈등은 두 사람이 함께 풀어야 할 과제이다
부부갈등은 한사람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다윗에게도 미갈에게도 내면의 상처와 성장과정에서의 아픔이 있었다. 그런 내면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한다.
다윗과 미갈의 부부갈등을 단순히 경건한 사람, 그를 대적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만 설명한다면 우리 인간의 성숙함에 이르는 노력은 아무 쓸모없는 일이 된다.
부부갈등은 두 사람이 함께 아파하고 고민하면서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함께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하고 보완해 주면서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삶으로 완성해 가야 한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노력을 통해 뭔가 얻고자 애쓰는 일로 되돌아가려는 성취지향적 경향이 있다. 잘한 일로 칭찬해주고 사랑한다고 하면 더 잘하려고 한다. 이런 방식에 우리는 완전히 속는다. 잘한다는 것과 사랑받는 것을 하나로 덧입혀 버린다. 성취와 하나님의 사랑은 별개이다. 성취하는 만큼 진정한 자신의 모습에서 멀어진다.
우리는 일을 잘하고 사람들에게 행동을 인정받을 때 용납 받는다고 생각한다. 귀중한 존재로 인식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 그 자체로 사랑해 주신다. 어떤 조건이 없는 무조건적으로사랑해 주시고 용납해 주신다.
다윗과 미갈 부부가 서로의 충돌을 풀어가지 못한 부분은 각자의 상처와 내면의 성숙되지 못한 원인을 찾아보는 기회로 삼았더라면 두 부부는 서로 치유되고 변화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이제 두 사람의 부부 갈등을 풀어 보자.

우선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된다
① 다윗이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데도 왜 아내 미갈의 비난을 포용하지 못했을까?
② 여호와의 사람이었던 다윗이 아내의 쓴 소리에 감춰진 여성의 본심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지혜는 왜 발휘하지 못했을까? 하늘의 기쁨이 그렇게 충만했는데도 아내의 핀잔, 아내의 무시를 수용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성령 충만이 부부갈등에 대해서는 전혀 힘을 발휘 못하는가?
③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의 기쁨과 행복은 그렇게 충만하다고 증거했는데 왜 아내의 내면에 있는 응어리진 상처는 돌보아 줄 여지가 없었을까? 그렇게 하나님께 잘 여쭈어 보던 사람이 정작 아내에 대해서는 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풀어 보려고 하지 못했을까?
④ 미갈은 왜 남편에게 화를 내고 분노했을까? 그녀의 분노의 뿌리는 과연 다윗을 향한 것이었을까? 그녀의 분노의 뿌리는 무엇일까?
여기에 내면 치유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내면치유(Inner Healing)란 무엇인가? 변화와 성숙을 위한(엡4:15) 기도와 상담사역이다. 이때 내담자의 시야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을 하게 한다. 왜(why, 내가 왜 이럴까?)를 하나님의 관점(who, 하나님은 어떻게 보시는가?)에게로 향하게 한다.
부부갈등에서 서로에게 정답을 주려고만 하면 영원한 평행성이 된다. 부부갈등의 정답은 해결책이 아니라 공감 (empath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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