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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회 논평] 어마무시한 10•29이태원 참사 특별법이라니?
    지난 해 4월 20일 더불어민주당의 남인순 의원이 대표 발의한 ‘10•29이태원참사피해자권리보장과진상규명및재발방지를위한특별법안’(의안번호:21515)이 지난 1월 9일 국회를 통과하였다. 여기에는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무소속 등 무려 183명이 발의자로 동참하였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남인순, 장혜영, 박주민, 노웅래, 도종환, 심상정, 우상호, 박 정, 서영교, 이수진, 김두관, 우원식, 윤건영, 권인숙, 정필모, 윤미향, 박홍근, 고민정, 이인영, 정청래, 이재명, 김민석, 김종민, 이재정, 윤영찬, 최강욱, 김영배, 강성희, 김의겸, 설 훈, 황운하, 김홍걸, 김남국, 홍영표, 박범계, 민형배, 안민석, 이상민, 홍익표, 윤후덕, 백혜련, 박병석, 김태년 등 모두 183명이 된다. 그 내용을 보면 17명으로 구성된 특별조사위원회를 두는데, 진상규명조사를 위하여 자료와 물건 제출명령, 동행명령, 고발 및 수사요청, 감사원에 대한 감사 요구, 청문회까지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피해 구제를 하는 것은 물론, 추모공원 조성, 추모기념관 건립, 추모제 개최를 할 수 있고, 추모 사업과 재단을 설립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에서 피해자들에게 생활비, 교육, 건강, 복지, 돌봄, 고용 등 다양한 것을 지원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피해자’를 규정함에 희생자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형제자매, 3촌 이내의 혈족을 유가족으로 정하고 있다. 거기에다 이태원 참사 당시 해당 장소에 체류하였던 사람, 긴급 구조와 수습에 참여한 사람, 그 지역에서 사업장을 운영하였거나 근로활동을 한 사람, 현장에 체류하였던 사람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형제자매, 이태원 참사로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입어 회복이 필요하다는 이유가 있는 사람까지 광범위하게 대상을 포함시키고 있다. 참으로 놀랍다. 그래서 피해자는 생활지원, 의료지원, 심리치료지원, 법률지원, 그리고 배상과 보상을 받을 권리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 법은 다른 법률에 우선하여 적용한다고 못 박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법은 강제성을 더하기 위하여 이에 반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엄청난 인신구속과 벌금형을 정하고 있다. 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리고 조사대상자 또는 참고인의 신원이나 조사 내용을 공개하고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을 때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 증인의 청문회 출석을 방해하거나 검증을 방해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그리고 정당한 사유 없이 물건이나 자료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말 무시무시한 법이다. 이 특별법은 한마디로 미쳤다. 정말 뜻하지 않게 사고를 당하고,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제2의 세월호, 혹은 5•18광주민주화법을 흉내 내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태원 사태는 2022년 10월 29일 서양 귀신놀이를 흉내 내는 ‘할로윈데이’에 많은 인파가 몰려 발생한 비극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국가 안보를 위해 앞장섰거나 국가적인 행사에 동원되어 희생한 것도 아니다. 당시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소정의 보상금과 장례비가 지급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듯 무슨 사건이 터질 때마다 특별법을 만들어 대처한다면, 우리나라는 거덜날 것이다. 이 법대로 하여 모든 피해자를 구제한다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남인순 의원실은 조사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따른 비용을 설정했는데, 무려 96억 8,700만원을 추계하고 있다. 지난 2022년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고 희생한 분들을 결코 폄훼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오직 정쟁을 위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한 방향으로만 달리는 고장 난 기차와 같다. 이 법안에 대하여 다행히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이 법은 다시 국회로 보내져 재의결에 들어가는데, 제발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정신을 차리기를 바란다. 우리 국민들은 무엇이 진정이고, 무엇이 정도(正道)인가, 아니면 지나친 것인지를 알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될 때에도 재석 298명 가운데, 여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재석 177에 177명이 찬성하여 만들어졌으나, 이는 반쪽짜리 의결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제 21대 국회도 저물어간다. 새롭게 탄생해야 할 제22대 국회는 국가와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릴 수 있는 국민의 대표를 올바로 선출해야 할 국민적 과제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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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4-02-16
  • [언론회 논평] 목사의 성직을 떠난 사람은 속히 목사직을 내려놓고 회개해야
    목사(牧師)를 성직자라고 한다. 하나님께로부터 거룩한 직임을 부여받은 것이다. 이는 이름이나 명칭이 아니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약 10년 정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신학대학(일반대학 4년)을 졸업하고 신학대학원 3년을 마치고, 목사 고시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약 3년 정도 목사 후보생 기간을 거친 후, 드디어 목사 안수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목사 안수를 받게 될 때도 하나님께 분명히 서약하게 된다. 교단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나겠으나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從)으로서,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사명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절대 소명에 종신토록 헌신하겠는가? 성경이 절대 무오(無誤)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신앙과 행위에 유일한 법칙임을 믿는가? 중생의 체험과 성령세례를 받았는가? 악의 세력과 이단 사조, 세속화와 자유주의 신학의 사조를 배격하며, 성경적 복음 신앙 노선과 교회를 굳게 지킬 것을 작정하는가? 핍박이나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인내하고 충심으로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며, 교회의 성결과 화평을 도모하며 근실하게 사역하기로 작정하는가? 등이다. 그러므로 목사의 길은 때로는 험난하고, 유혹도 많고, 또 핍박도 각오해야 하는 성직(聖職)이다. 그러나 오늘날 목사직에서 이탈한 타락한 목사들을 보게 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매우 부끄러운 일이며, 목사직의 성실함을 아는 국민들에게 매우 죄송한 일이다. 또한 신앙을 본받고 따라야 할 일반 성도들에게도 머리 숙여 사죄의 마음을 갖는다. 목사직은 매우 신성하고, 신적 권위와 신탁(神託)에 의하여 그 사명과 직분이 행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직업처럼, 혹은 목사직을 이용한 세속에 물들고 타락한 모습을 볼 때, 한국교회의 대오각성이 필요하다. 각 신학교와 교단에서는 목회자 후속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라도 <참된 목회자상>을 계속 가르쳐야 한다. 최근에 목사라는 사람이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대통령 부인에게 함정을 파서 접근하고, 몰래카메라를 들이대서, 그 대화한 것을 한참이 지난 뒤에 편향된 언론 매체를 통하여 공개함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는 일반인도 그런 방법으로 타인에게 충격을 주거나 공격하지 않는 더러운 방법이다. 더군다나 북한의 공산주의와 자주 접촉한 후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 그가 했던 말을 보아도,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세력들이 쓰는 ‘내재적 접근’이란 말을 쓴다. 이는 북한 공산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평화나 정의를 주장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는 한참 빗나간 모습이 되고 만다. 공산주의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기독교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교회를 가장 먼저 깨부수어야 할 적(敵)으로 본다. 그들은 종교를 아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영적으로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독교도 공산주의를 무신론, 유물론, 계급투쟁, 인민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산당과 그 핵심 세력의 권력을 위한 집단으로 보기 때문에, 절대 반대한다. 그런데 목사라는 사람이 공산주의에서 주장하는 것을 신봉하고, 또 여러 가지 불법과 꼼수를 통하여 나라를 혼란하게 만든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며, 그에 대하여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목사는 교회를 사랑하면서도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고, 약한 사람들을 돕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도 바른 정치를 하도록 기도하고 충고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비열한 방법으로 국가와 사회를 혼란하게 하고, 기독교를 무너트리려는 공산주의 편에서 활약하는 것은 이미 목사의 소명과 자격을 상실했다고 본다. 세상에서의 지도자는 그에게 잘못이 있으면, 국민들과 사람들이 평가하게 된다. 그러나 목사로 세움 받은 사람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한다. “개(배교자, 회개 전으로 돌아간 자)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요한계시록22:15) 세상에서 변하지 말아야 할 직종이 있다. 교사들이다. 교사들이 이념적으로 사상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면, 그들에게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직자이다. 특히 기독교의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고, 진리를 떠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從)의 사명에서 벗어났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룩한 공동체인 한국교회에는 얼마나 많은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므로 전도의 문을 막는 것인가? 교회에 덕을 세우고, 유익을 주지 못하는 목사라면 당장이라도 그 직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의 개인 구원을 위해서라도 힘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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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4-02-16
  • [언론회 논평] 대법원의 성전환에 대한 성별 정정은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지난해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법원이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정정 신청 사건을 처리하며 성전환 수술 등을 참고할 수 있다’고 규정한 예규 일부 조항이 문제가 있다고 한 바 있다. 이에 대법원(대법원장 조대희)에서는 법원행정처로 하여금, 예규의 개정을 검토한다고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현행 대법원에서는 가족관계등록예규를 두고 있는데, 그중에 제550호에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이 있다. 이 지침 제6조의 트랜스젠더로서 성별정정을 하려면, 성전환 수술의 결과 생식능력을 상실했고, 향후 종전의 성으로 재전환할 개연성이 없거나 극히 희박한 지 여부, 미성년자가 있는 지의 여부, 성전환 수술을 받아 현재 생물학적인 성과 반대되는 신체의 성기와 흡사한 외관을 갖고 있는지의 여부, 그리고 생식능력이 없음을 확인하는 의사 소견서를 제출한다는 것이 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침해 소지와 인격권 침해가 발생한다며, 대법원에 예규를 전반적으로 개정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성전환 수술을 한다는 것과, 그에 따른 외부 성기의 모습을 자신이 원하는 성으로의 외관을 갖추는 것 등이 어려운 수술이라는 것은 이해한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중요 기준이 되는 예규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법원이 성별 정정을 해준다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이에 대하여 반대하는 입장에 있는 시민단체들이 그 부작용에 대하여 밝힌 바에 의하면, 남성의 생식능력을 유지한 채, 여성으로 성별 정정을 받은 사람이 여성 전용 시설을 이용할 때, 여성의 안전권이 침해된다고 하였다. 외국의 경우 남성의 성기를 가진 성전환자가 여성을 성폭행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또 여성으로의 생식능력을 유지한 트랜스젠더 남성과 생물학적인 남성 사이에 성관계를 통하여 임신한 사례도 있다. 그리고 남성이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후 여성 선수로 활동하여 다른 여성 선수들에 비하여 월등한 경기력을 나타낸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했다고 하지만, 남성 성기를 유지한 사람이 발기한 남성 성기를 노출한 채, 다른 여성들을 위협하고 성희롱한 사건도 있다고 한다. 사람이 태어날 때의 성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또 백번 양보해서 불가피하게 성전환 수술을 하고 성별 정정을 하게 될 경우에도, 이를 인정할만한 매우 합당한 증거를 통하여 사회 질서를 깨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 개인 개인의 인권이 중요한 것은 안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나 국민 전체나 가정의 질서와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것이라면, 쉽게 그 길을 터주어서는 안 된다. 만약 대법원이 예규를 고쳐서 이런 혼란한 일들을 조장한다면, 그 책임을 누가 지겠는가? 더군다나 이런 무분별한 성별 정정이 이뤄져, 병역기피와 같은 수단으로 악용된다면 국가의 존망을 흔드는 것이 된다. 국가 기관들이 국민을 위하고, 인권신장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만, 이번과 같이 있던 기준도 다 해제하고, 함부로 성별 정정을 해주겠다는 발상은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가치와 목적을 가지고 망나니 춤을 추는 것에 휩쓸리는 것과 같다. 정당한 기준마저 망실한다면, 그것은 국가적이나 사회적으로 큰 재난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법 상식과 인간 삶의 기본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헌법에서 보장하는 남녀의 양성 평등 기준을 확고히 세워야 한다. 대법원은 단순히 법관들의 모임이 아니라, 국민의 바른 생각과 법의 평등한 가치와 국민 모두에게 행복의 기회를 주는 국가 최고의 사법 기관이 되어야 한다. 오히려 대법원은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의 사무처리지침에서 예규(例規)로 느슨하게 규정할 것이 아니라, 아예 법규(法規)로 규정하여 이를 엄격하게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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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4-02-16
  • [박정규 박사의 한국교회사가 열전] 김수진 박사(1935-2023)
    본격적 지방교회사 연구 시대를 연 교회사학자 ‘한국기독교회사 호남편’‘호남기독교 100년사’등 대표적 저서 많아 전라남도 신안 출신…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 김수진(金守珍)은 1935년 4월15일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면에서 부친 김환웅과 모친 김길례 사이에 8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시절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만주전쟁으로 인해 모든 물자를 약탈 당하고, 민중의 삶은 초근목피로 생명을 근근히 이어가는 처참한 시기였다. 그래도 수진이는 부모님의 보살핌으로 어린 시절을 구김살 없이 천진난만하게 자랄 수 있었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일제의 강압에 의해 조선말을 잃고 고향 미금국민학교에서 일본말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머리가 명석해 광주제일중학교로 진학하였고, 졸업 후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광주 숭일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이는 부모님과 스승들의 보살핌도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다져온 기독교 신앙교육이 그의 내적 발전을 깨우쳐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태어나던 해 유아세례를 받았고,학교생활을 하면서도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지 않은 것은 후에 그가 기독교 지도자가 되는데 큰 원동력이 되고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호남지방에 복음을 전한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다. 대학은 서울에 있는 단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는데, 미래를 위해서 외국어를 택한 것은 그의 혜안이었고 주님의 섭리였다. 대학을 마친 후엔 장로회신학대학 신학대학원에 지원했다. 이는 목회자로서 소명의 길을 걷기 위함이었다. 그는 장로회신학대학을 마친 후, 당시 WCC로부터 제3세계 신학발전을 위한 T.E.F 기금을 유치해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 역사신학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남장로회 선교부로부터 스칼라십을 얻어 일본 교토에 있는 동지사대학(Toshishd University) 대학원에서 신학석사(Th.M) 학위를 받았고, 이어서 미국 파사데나에 있는 풀러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D.Min) 과정을 거쳐, 코헨신학대학원에서 신학박사(Th.D) 학위를 마쳤다. 교회사 연구와 강의… 목회에 헌신 김수진이 이와같이 일본과 미국의 신학대학들을 섭렵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고 본다. 일제 때 국민학교에서 듣고 배운 일본어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것이 그의 역사신학연구에 기초가 되었고 학문의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교회사 연구를 하면서, 특히 호남지방교회사를 연구하게 된 계기도 호남땅에 생명의 복음, 구원의 복음을 전해준 미국 남장로회 선교부에 고마움도 있었지만,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호남땅에, 19세기 말 희망이 보이지 않던 척박한 시대에 복음과 의술, 교육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희망을 심어주고 무지를 깨우쳐 준 신문명의 선구자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동지사대학에서<일본기리시도교회사> 교수인 도이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도이는<일본기독교회사>를 쓴 학자요 교수일 뿐 아니라, 한국에서 유학을 온 김수진에게 학문적인 스승이 되어 주었고, 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해준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는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는 모교인 장로회신학대학을 비롯, 대전신학교, 중앙신학교 대학원 등에서 한국교회사를 강의하며 목회를 겸해 헌신하였다. 그가 최초로<한국기독교회사>를 집필하면서 간행한 저서가 '호남편'이란 이름으로 그의 제자 한인수(韓仁洙)와 공편으로 낸 교회사 관계 저서이다. 이 책은 1980년 11월 30일 범륜사에서 간행했는데, 국판으로 430면에 이르는 본격적인 저서였다. 책의 명칭은<韓國基督敎會史 湖南篇>(한국기독교회사 호남편)으로 되어 있다. 한국기독교 100년사 가운데 특정지역을 연구한 시초였다. 본 필자는 당시 대구 지방에서 목회를 하던 중 이 책을 단번에 밤을 새워 완독을 하고 감동을 받아, 그때부터 대구 경북지방 교회관계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 1994년 <大邱地方敎會史>(대구지방교회사)를 낸 바 있다. 미국 남장로회, 호남지방에 수많은 지도자 배출 김수진의<한국기독교회사> '호남편'의 출간은 한국교회에서 직간접으로 지방교회사 연구에 불을 붙인 연구물로 기록될만 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저서가 간행된 후 한국기독교 역사가 한 세기에 접어들었고, 이에 발맞추어 한국교회사 연구에 기름을 부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즈음에 일반 역사학계에서도 소위 지방사 연구붐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간간히 역사있는 교회들이 80년사 혹은 90년사 등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각 교단 신학교에서도 한국교회사 관련 학위 논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또 능력있는 교회사학자들 중심으로 한국교회 역사를 연구하는 학술연구단체들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김수진. 한인수가 펴낸<한국기독교회사> '호남편'의 편찬 내용을 보면, 표제에 걸맞는 호남선교를 위해 내한한 미 남장로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사진 14면, 신사참배를 거부한 순교자 및 6.25 동란 때 희생된 순교자 7면, 호남선교 역사 관련 화보 10면, 호남 출신 총회장 사진 3면 등이 있으며, 호남선교를 위해 헌신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어 편집상 많은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보인다. 이 저서를 뒷받침한 발간위원회 위원장 김종대 목사의 머릿말을 보면, 이 책을 내게 된 동기를 읽을 수 있다. "… 한국교회사 하면 이것은 장로회신학교가 있던 평양을 중심한 평안도와 황해도의 역사와 미 연합장로교의 한국선교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북장로교의 선교사들의 노고는 높이 평가해야 하고, 또 그 지방의 초대교회 지도자들의 활동도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 1892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북장로교의 선교사들의 충동에 그 넓은 곡창지대 호남땅을 밟기 시작했다. 이들도 미 북장로교 선교사들 못지 않게 갖은 고생과 고난을 겪으며 복음을 전했다. 교회도 수없이 세우고, 병원도, 학교도 세웠다. 또 많은 지도자들을 배출하였다. 이들의 활동을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며, 앞으로 경기도지방을 중심한 교회사도, 또 경상도지방을 중심한 교회사가 나올 때, 한국 전체 교회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믿는다."(한국기독교회사 호남편, 1980 p.61). 오늘날 호남지방 교회성장은 수난 당한 성도들의 '피의 열매' 저자 김수진 박사는 책의 머릿말에서 집필 소회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활동했던 호남지방교회사를 엮어간다는 것은 여간한 고충이 아니었다. 이미 한국에 많은 교회사가 출간되었지만, 호남지방을 배경으로 한 교회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되는 일이어서 자연히 자료를 준비하는데 많은 애로가 있었다. 모든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데서 일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모험이었다. 그러나 여러 생존해 있는 증인들의 아낌없는 성원과 또 오래도록 간직했던 자료를 제공하는데 힘을 얻고 직접 지방을 답사하면서 얻어진 자료를 하나하나 정리해 나갔다. 여기에 특별한 사관을 가지고 집필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자료에 의거 연대기적으로 나열한 것임을 밝혀둔다. 말없이 조용하게 호남교회(湖南敎會)가 성장하는 것처럼 느꼈지만 자료를 대하고 직접 만나고 교회를 답사했을 때, 호남교회들은 피나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노력과 또 완고한 유교적 가정에서 이교도(異敎徒)의 기독교를 접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예수를 영접했다는 사실들이다.또 일제의 학정으로 인한 숱한 성도들의 곤욕, 누구나 다 겪여야만 했던 이 민족의 6.25 동란이었지만, 호남지방 교회만큼 수난을 당한 교회는 없으리라고 본다. 결국 이들의 피가 지금 호남 평야 넓은 들에 수없이 흘러가고 있다. 이 피가 가는 곳마다 우뚝 솟은 교회를 볼 수 있으며, 산촌(山村)에서도, 수많은 도서(島嶼) 지방에서도 교회는 우뚝 솟아 있다. 막상 책이 손에 쥐어진다는 생각을 하니 좀더 정확하게 기록을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 밖에 없다. 그저 기쁨보다는 후회가 많다." (같은 책, p.63). 이 책 외에도 김수진 박사의 저서로는1994년 1월부터 전북일보 지상에 매주 연재한<전북 개신교 100년>이란 글을 모아<호남기독교 100년사>(1998)를 간행한 바 있고, <한국교회 평신도운동사>(1984), <6.25 전란과 순교자들>(1981), <호남선교 100년과 그 사역자들>(1993), <한일교회의 역사>(1990), <일본개신교사>(1992), <광주초대교회사연구>(1994), <일제의 종교 탄압과 한국교회의 저항>(199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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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규 목사의 한국교회사가 열전
    2024-02-15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강성률 목사의 ‘하나님이 붙여주신 것을 누리라’
    “이에 자기 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취하여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매 저희가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왕하3:27). 열왕기하 3장에는 이스라엘 아합왕의 아들 여호람 시대에, 모압 왕 메사가 새끼 양 십만의 털과 수양 십만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조공하였는데, 아합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자 여호람 왕이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에돔 왕과 함께 모압 왕을 치러 갔습니다. 그들이 길을 둘러 행한지 칠일에 군사와 따라가는 생축에게 먹일 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를 불러 어떻게 해야 좋을지 물었습니다. 엘리사는 그곳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면 물이 가득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은 오히려 작은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큰 일은 ‘하나님께서 모압 사람도 그들의 손에 붙이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의 말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골짜기 주변에 개천을 많이 팠습니다. 그러자 아침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물이 에돔 편에서부터 흘러와서 그 땅에 가득하였습니다. 그래서 식수난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모압 사람을 쳐서 달아나게 하였습니다. 모압 왕은 그들이 이스라엘 연합국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의 맏아들을 취하여 그들의 우상에게 번제로 바쳤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여 고국으로 철군하였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압 왕이 항복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 이스라엘을 섬겼다는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과 연합국은 그들이 그곳에 왔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철군한 것입니다. 엘리사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오히려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붙이시리니”(왕하3:18). 길을 행하다가 물이 가득하게 된 것은 큰 은혜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본질이 아니라 과정 중에 일어난 은혜였습니다. 더 큰 일은 모압 왕이 그들에게 항복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엘리사를 통하여 모압을 이스라엘에게 붙이셨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왕과 군사들은 모압 왕과 군대의 항복을 받기 전에는 철군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왜 돌아서고 말았을까요? 본문에 대하여 쉬운 말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모압 왕은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붙잡아 성벽 위에서 불로 태워 자기들의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이를 본 모압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고 분노심이 끓어올라 죽기 살기로 싸울 태세를 취하자, 이스라엘 연합군은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고 후퇴하여 고국으로 돌아갔다.” 모압 왕이 그의 맏아들을 불에 태워 바치자 모압 군인들에게 분노심이 폭발한 것입니다. 그 분노심에 그들은 죽기살기로 싸울 태세였습니다. 그것을 본 연합국이 겁에 질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모압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모압 사람들의 결사적인 항전 태도를 보고 떨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압 왕의 항복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차려놓으신 밥상을 두려움으로 인하여 먹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열 지파가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아낙 자손들의 강대함을 보고 마음이 녹아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다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 당한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구속 사역을 이루셨고,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으며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신앙인들 가운데는 구원받은 자답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여전히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의는 예수님의 의입니다. 우리의 행위는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사방팔방에서 공격하는 사탄 또한 예수님의 승리하심을 선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을 해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들이 울부짖는 것은 단지 우리 안에 갇힌 짐승의 소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담대하게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붙인 것을 우리가 누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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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3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성도와 목사는 품격을 지켜야”
    지난 월요일 낮에는 이슬비가 내리더니 저녁에는 갑작스럽게 눈바람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눈이 오면 무조건 산행을 하는 습관이 있거든요. 산에 가니까 역시 길에는 쌓이지 않았던 눈이 고스란히 하얗게 쌓여 있었습니다. 벤치에도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는데, 앉아 보고 싶었지만 눈이 쌓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앉지를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습니다. 교회 뒷산만 잠시 갈까 싶었는데 너무 아쉬워서 죽현산까지 올라갔습니다. 죽현산에 올라가니까 눈이 더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나무들마다 하얀 눈꽃을 피운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이것 역시 하나님의 솜씨요 걸작품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떤 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요즘 목사님 설교가 굉장히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기사를 많이 썼더라구요. 목사님 설교를 기자들까지 많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인문신답시리즈’를 주제로 ‘전도서 강해’를 하면서 해당 구절을 그대로 설명하고 우리의 현실과 삶에 적용했을 뿐입니다. 저는 먼저 누구든지 사람이 살면서 잘못했을 때는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공손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지혜자라고 하였습니다.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공손함이 큰 허물을 용서받게 하느니라”(전10:4) 또한 주권자의 허물은 백성에게 재난을 가져온다고 했습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재난을 보았노니 곧 주권자에게서 나오는 허물이라”(전10:5) 그리고 연이어서 또 함정을 파는 자는 자기가 빠지게 되고 담을 허는 자는 뱀에 물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면서 절대로 남을 넘어뜨리기 위해 함정을 파거나 덫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에 빠질 것이요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전10:8) 그러므로 지혜자는 언제나 사람을 살리고 덕을 세우며 은혜로운 말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이 대목으로 통화녹음을 하여 오용하거나 몰카 촬영을 하여 유튜브에 올리는 것은 성도들이나 목사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항상 조심하며 덕을 세우고 은혜로운 말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4:29) 당연히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그렇게 파장이 클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어느 기자는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건 목사님의 잘못이 아니죠. 목사님은 분명히 설교를 잘 하신 것입니다. 목사님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겠죠. 우회적으로 시그널을 준 것이지만 어쩌면 목사님의 지혜는 대단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인 정치평론가 최진 박사도 동일한 견해를 전해 주셨습니다. “목사님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그만큼 목사님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셈이죠. 사실은 자연스럽게 터치하고 적용한 설교였는데요. 하지만 영향력이 커진만큼 더 성경적 가치와 복음의 진리를 잘 전해야 하겠습니다.” 어쨌든 기자들은 대단합니다. 자연스러운 이야기도 빅 이슈화를 시키니까요. 물론 기사가 부정적으로 실린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저의 설교를 시청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흐트러지지 않고 중심을 잡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는 때로는 제사장적 위로의 설교도 해야 되지만 때로는 선지자적 견책의 설교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저는 절대로 이념에 치우치거나 어떤 편파적 성향을 가지고 설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언제나 성경적 가치와 진리를 전하는 설교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 본문으로 다시 설교를 한다 하더라도 지난번과 같은 현실적 삶의 적용을 피해 가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는 성도답게 살고 목회자 역시 품격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죠. 우리 모두 성경적 가치와 진리를 지키며 품격 있는 삶을 살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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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1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이상길 목사의 ‘빛의 열매를 맺는 삶’(엡 5:8-9)
    성경에 의하면 우리는 본래 어두움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빛의 자녀가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령에 하나님의 빛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 빛이 있을 때 사람의 생명이 값지고 귀합니다. 이 빛을 저버리고 살 때 죄와 타락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싶어서 이 빛을 싫어합니다(요 3:19-20). 참 빛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셔서 빛을 비춰주셨어도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그 진리를 받지 않았습니다(요 1:9-11). 사람들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면 합당치 못한 일 즉 빛이 아닌 어두움의 행실에 빠집니다. 이와 같이 육신의 생각과 정욕을 좇아가는 사람에게는 참 평안이 없고, 괴로움에 빠지며 죄책감, 부끄러움만 있을 뿐입니다(롬 8:5-8). 이런 사람들에게는 심판과 저주와 멸망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빛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어두움 속에 헤매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자녀답게 살아감으로 빛의 열매들을 맺어야 하겠습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9절). 하나님께서는 빛으로 거듭난 사람에게 이 성품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빛으로 거듭난 사람은 그 열매를 맺게 됩니다. 빛의 자녀들이 빛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육신을 좇지 않고 성령을 따라서 행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성령님께서 말씀을 깨닫게 해주셔야 실족하지 않고 올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면 육신의 삶에서 벗어나 빛의 자녀로 살아가게 됩니다. 빛의 자녀들은 어두움의 일을 벗어버릴 때 빛이 그 사람을 사로잡아 변화시키고 그 사람 안에서 이 빛의 인격이 이루어져 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롬 13:11-14). 마귀 지배하에 살면 어두움에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육신대로 살지 말고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하겠습니다(롬 8:12-14).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빛을 받아 이 세상에 착하고, 의로우며, 진실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개인의 인격이 진실해야 하나님 앞에서나 이웃과의 삶에서 진실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실존의 원줄기이신 하나님의 본성이 진실하심으로 그 줄기에 붙어있는 가지는 진실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계 19:11). 예수님의 인격도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인격은 선하고 의롭고 진실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빛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 때 우리가 가는 곳마다 변화가 일어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정직하며, 의롭고, 착하다는 소문이 날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마 5:16). 빛이 결코 숨기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모든 일이 분명하고 숨김없이 적나라하고 공명정대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내 삶을 통해서, 인격을 통해서 주님께서 나타나는 영광을 사모하며, 주님의 도구로서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실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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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역사의 거울 앞에서 외친 유레카!
    제가 총회장 시절에 저의 행보를 은근히 비판하던 기자가 있었습니다. 저와의 관계를 봐서라도 얼마든지 칭찬 기사를 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칭찬에 아주 인색하였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그 분이 제 총회장 시절의 업적을 웅장하게 찬하하는 기사를 쓴 것입니다. 박형룡 박사와 정규오 목사 중심의 51인 신앙동지회의 역사가 묻힐 뻔했는데, 다행히 105회 총회장인 소강석 목사가 이걸 밝혀내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소강석 목사는 총회 재원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자신이 섬기는 새에덴교회를 통해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역사 다큐멘터리’와 갈라콘서트 ‘불의 연대기’를 제작하여 총회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에 대한 중요성을 각인시켜 주었다는 것이죠. 이러한 역사를 집대성한 일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 창립 이후 최초의 일이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지금껏 총회는 총회 설립 기념일을 지키는 일 외에 이러한 역사의 파노라마를 집대성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강석 목사와 새에덴교회는 엄청난 재원을 헌금하여 100년이 넘는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역사를 집대성하였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제105회 총회가 박형룡 박사와 정규오 목사 중심의 51인의 신앙동지회의 역사를 조명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며, 이러한 신학적 정체성을 거부한 자들은 총회의 신학적 정체성에 반하는 자들이 틀림없다는 평가까지 기술하였습니다. 저는 그 기사를 읽고 참으로 많은 회한과 상념의 바다에 잠겼습니다. 제가 총회 갈라콘서트를 하자 영상을 보고 일부에서는 51인 신앙동지회와 정규오 목사님을 너무 치켜세우지 않느냐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를 쓰신 분은 51인 신앙동지회를 연구해서 석사학위를 받은 분입니다. 그분이 이번에 아주 공정하게 글을 써주셨는데, 소강석 목사의 갈라콘서트가 정말 총회의 역사적 팩트를 다큐멘터리로 잘 정리했을 뿐 아니라, 극화하여 뮤지컬로도 잘 정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총회장이 없었다는 거예요. 사실 저는 부총장 시절부터 전략적으로 기독신문에 ‘총회 100년을 설계하다’라는 제목으로 47회에 걸쳐 총회 역사를 정리하는 글을 썼습니다. 그걸 바탕으로 하여 다큐멘터리 시나리오와 갈라콘서트 대본을 썼지요. 그런데 이번에 다시 한번 보며 “아, 내가 이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면서 까마득한 옛날 시절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특별히 코로나 시국에 목사장로기도회를 하고 갈라콘서트를 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때는 아예 모일 수도 없었거든요.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도와주려고 했는데, 시와 도에서 동의를 해줘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모든 어려움을 풀어내고 목사장로기도회를 했고 갈라콘서트를 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다시 봐도 총회 역사 다큐와 갈라콘서트는 정말 대작이었습니다. 특히 갈라콘서트는 제가 직접 작곡하지는 않았지만, 처음 작곡해 온 곡들 중에 많은 곡을 버리고 계속 다시 수정하라고 주문했고, 나중에는 제가 부분적으로 편곡까지해서 만들어낸 작품들이었습니다. 당시 류형길 지휘자가 참 수고를 많이 해 주었습니다. 제가 밤을 새우며 보고 또 보면서 제 자신에 대해서 감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 코로나를 대응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예배에 대해서는 지고지순한 믿음의 절개를 지키면서도 보랏빛 소의 전략을 구가하는 양면적 전략을 짜느라 잠 못 드는 밤이 많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아찔하기도 하고 어메이징 합니다. 과거의 일이지만 “내가 다시 총회장을 한다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내가 다시 연합기관 대표회장을 한다해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제가 부총회장 때부터 전략적으로 글을 쓰면서 축적을 한 것입니다. 사실 갈라콘서트도 원래는 세종문화회관을 대관해놓고 뮤지컬로 공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회에서 한 것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저의 전략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때그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영감, 창의적 지혜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총회장을 하면서 그 누구로부터도 부정적인 청탁을 받거나 단 한 푼의 부정적인 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총회장을 하면서 수많은 교회를 살리려고 후원을 하였고, 총회 재정을 통하여 2160교회에 21억6000만원을 전달하였고, 또 500명의 선교사들에게 5억을 전달하였습니다. 또한 우리 교회 자체에서도 총회와 개척교회와 선교사들에게 20억이 넘는 재정을 지출하였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요, 다음은 담임목사의 결단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해주신 우리 장로님들과 성도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성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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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4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강성률 목사의 ‘마르다의 기도’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눅10:40). 본문은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에 대한 내용 가운데 발췌한 부분입니다. 자매는 예수님을 초대하였습니다. 그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동석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또한 나사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본문에 등장한 사람은 모두 세 사람이었습니다. 이 때 마르다는 꽤 분주하고 바쁩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형편을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것입니다. 집안이나 직장이나 군에서 대소사가 있을 때, 나는 이 일 저 일에 매우 분주한데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나 혹은 하급자가 텔레비전을 보거나, 다른 사람하고 담소하거나, 어린 자녀들에게 손뼉을 치며 장단을 맞출 때 그것을 먼발치에서 보는 사람의 입장으로는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를 것입니다. 담대한 사람은 직접 가서 한마디 하지만, 소심한 사람은 말은 못 하고 연이어 속앓이만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대처하는 방법을 우리는 마르다에게 배워야 합니다. 마르다는 직접 말하지 아니하고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오늘날로 말하면 마르다는 마리아를 불러 따끔하게 말하지 아니하고 마리아에 대하여 예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주지 아니하고 해결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주님, 동서로 하여금 이 바쁜 나를 도와주라 명하소서.” 마리아의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은 마리아가 요구한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10:41-42). 이처럼 기도에 대한 응답은 우리 자신이 원하는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르다는 더 이상 주님께 불평도 원망도 늘어놓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동의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마르다가 원하는 방법으로 기도를 응답하시지 않았지만 마르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복잡한 것보다 일을 단순화 시켜야 한다는 귀중한 교훈을 가르쳤습니다. 얼마 후에 두 자매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은 후 나흘만에 살아난 사건이 있었습니다(요11:1-44). 그 일에 대한 고마운 마음으로 그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요12:1-8). 마르다와 마리아의 위치는 여전히 똑같았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잔치의 목적과, 참석한 인원이었습니다. 이 전에는 세 명이었는데 지금은 예수님과 열 두 제자들, 그 집의 주인 시몬과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 모두 열 여섯 명이었습니다. 이 때도 마르다는 혼자 일을 봅니다. 그런데 지난 번 상황과 다르게 한 마디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참석 인원이 다섯 배 이상 늘었는데도 잔치상 준비하는 일을 무난히 해 나갑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에 대하여 기도한 마르다에게 그 모든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는 그가 원하고 바라는 것 이상의 것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슨 문제가 있으면 상대방에 대하여 원망하거나 섭섭한 마음을 곧 잘 품습니다. 그러다가 홍수를 퍼붓듯 쏟아버리거나 끝내 속 병이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 여러분의 심정을 다 말씀드리면 됩니다. 있는 그대로 고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반드시 주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응답해주시고 또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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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31
  • [언론회 논평] 목사의 성직을 떠난 사람은 속히 목사직을 내려놓고 회개해야
    목사(牧師)를 성직자라고 한다. 하나님께로부터 거룩한 직임을 부여받은 것이다. 이는 이름이나 명칭이 아니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약 10년 정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신학대학(일반대학 4년)을 졸업하고 신학대학원 3년을 마치고, 목사 고시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약 3년 정도 목사 후보생 기간을 거친 후, 드디어 목사 안수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목사 안수를 받게 될 때도 하나님께 분명히 서약하게 된다. 교단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나겠으나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從)으로서,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사명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절대 소명에 종신토록 헌신하겠는가? 성경이 절대 무오(無誤)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신앙과 행위에 유일한 법칙임을 믿는가? 중생의 체험과 성령세례를 받았는가? 악의 세력과 이단 사조, 세속화와 자유주의 신학의 사조를 배격하며, 성경적 복음 신앙 노선과 교회를 굳게 지킬 것을 작정하는가? 핍박이나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인내하고 충심으로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며, 교회의 성결과 화평을 도모하며 근실하게 사역하기로 작정하는가? 등이다. 그러므로 목사의 길은 때로는 험난하고, 유혹도 많고, 또 핍박도 각오해야 하는 성직(聖職)이다. 그러나 오늘날 목사직에서 이탈한 타락한 목사들을 보게 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매우 부끄러운 일이며, 목사직의 성실함을 아는 국민들에게 매우 죄송한 일이다. 또한 신앙을 본받고 따라야 할 일반 성도들에게도 머리 숙여 사죄의 마음을 갖는다. 목사직은 매우 신성하고, 신적 권위와 신탁(神託)에 의하여 그 사명과 직분이 행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직업처럼, 혹은 목사직을 이용한 세속에 물들고 타락한 모습을 볼 때, 한국교회의 대오각성이 필요하다. 각 신학교와 교단에서는 목회자 후속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라도 <참된 목회자상>을 계속 가르쳐야 한다. 최근에 목사라는 사람이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대통령 부인에게 함정을 파서 접근하고, 몰래카메라를 들이대서, 그 대화한 것을 한참이 지난 뒤에 편향된 언론 매체를 통하여 공개함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는 일반인도 그런 방법으로 타인에게 충격을 주거나 공격하지 않는 더러운 방법이다. 더군다나 북한의 공산주의와 자주 접촉한 후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 그가 했던 말을 보아도,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세력들이 쓰는 ‘내재적 접근’이란 말을 쓴다. 이는 북한 공산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평화나 정의를 주장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는 한참 빗나간 모습이 되고 만다. 공산주의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기독교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교회를 가장 먼저 깨부수어야 할 적(敵)으로 본다. 그들은 종교를 아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영적으로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독교도 공산주의를 무신론, 유물론, 계급투쟁, 인민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산당과 그 핵심 세력의 권력을 위한 집단으로 보기 때문에, 절대 반대한다. 그런데 목사라는 사람이 공산주의에서 주장하는 것을 신봉하고, 또 여러 가지 불법과 꼼수를 통하여 나라를 혼란하게 만든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며, 그에 대하여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목사는 교회를 사랑하면서도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고, 약한 사람들을 돕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도 바른 정치를 하도록 기도하고 충고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비열한 방법으로 국가와 사회를 혼란하게 하고, 기독교를 무너트리려는 공산주의 편에서 활약하는 것은 이미 목사의 소명과 자격을 상실했다고 본다. 세상에서의 지도자는 그에게 잘못이 있으면, 국민들과 사람들이 평가하게 된다. 그러나 목사로 세움 받은 사람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한다. “개(배교자, 회개 전으로 돌아간 자)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요한계시록22:15) 세상에서 변하지 말아야 할 직종이 있다. 교사들이다. 교사들이 이념적으로 사상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면, 그들에게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직자이다. 특히 기독교의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고, 진리를 떠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從)의 사명에서 벗어났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룩한 공동체인 한국교회에는 얼마나 많은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므로 전도의 문을 막는 것인가? 교회에 덕을 세우고, 유익을 주지 못하는 목사라면 당장이라도 그 직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의 개인 구원을 위해서라도 힘쓰기 바란다.
    • 칼럼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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