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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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탄핵 정국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국회에서 결의한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라는 외침과 그 탄핵을 기각하라는 외침이 군중들 사이에 첨예하게 대립했었다. 전자를 촛불집회라 불렀고, 후자를 처음엔 맞불집회라 부르다가 곧 태극기집회란 표현으로 바꾸어 불렀다. 전자에 대한 호칭은 앞서부터 사용해 오던 터라 자연스럽게 들렸지만 후자에 대한 호칭만은 조금 부자연스럽게 들렸다. 무슨 3․1운동 때의 거사에 대한 명명(命名)인가 하는 의구심을 드러내는 이들도 없지 않았으나, 어떻든 그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모임을 주도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는 면도 없지 않았다고 보겠다.
이 두 대립적 양상의 집회는 전자가 비교적 온건하고 평화적인 집회의 모습을 지속시키고 있었다면, 후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거칠고 폭력적인 양상까지 드러내기 시작함으로써 전자를 선량한 사람들의 모임, 후자는 악동과 같은 이들의 모임 정도로 보게 하는 면마저 노정하고 있었다. 후자의 모임의 경우 특히 그 지도자 격인 인물들의 언행이 다분히 악동적인 면을 드러냄으로써 일반인들이 태극기집회 전반(全般)을 무슨 악동들이 주도하는 모임처럼 바라보게 만들었지 않았나 싶다. 김진태 의원, 서석구 변호사, 김평우 변호사 등이 그 지도자 군의 트리오(三大家)였다고 표현해 볼 수 있겠다.
그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대형 태극기를 온몸에 칭칭 감고서 무슨 태극결사대의 충성스런 대원과 같은 비장한 모습으로 행동했는데, 그랬으면서도 그런 그들의 행동이 국민들에게 별로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은 당시 그 탄핵이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선량(選良)들의, 국회에서의 합법적인 결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동시에 국민 자신들의 의견마저도 85% 이상이 그 탄핵을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엄연히 나와 있는 실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것에 역행하는 그런 돌출 행동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특히 그 트리오 인물들 가운데 미국에서 귀국해 제일 나중에 합류한 김평우 변호사에 대하여 보다 더한 관심이 기울어지게 된다. 아무래도 필자가 문단(평단)의 말석에서나마 활동하고 있는 문인의 처지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달리 말해 김 변호사는 고 김동리 작가의 아들(차남)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주 안된(잘못된?) 것은, 아무래도 이번에 그 아들이 고국에 입국해 한바탕의 흑색돌풍을 일으키지만 않았어도 아비 김동리는 우리에게 매우 인상적인 작가, 또는 문학애호가들이 상당히 숭모하는 작가 정도로 그 괜찮은 위치를 유지하고 있었을 법도 하다. 다시 말해 <무녀도>와 <등신불>…과 같은 단편소설의 작가, 또는 <사반의 십자가>와 <을화>와 같은 장편소설의 인기작가로서 그의 한국 문학사적 위치가 제법 튼튼한 작가로서만 기억될 수 있었으리란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그 기대는 그 아들의 갑작스런 출현과 돌출된 언동 때문에 무너져 내리지 않았나 판단된다.
좀 엉뚱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부전자전이란 말이 있듯이 두 부자(父子)의 유명세는 이제 막상막하가 되지 않았나 여겨질 정도이다. 유명세도 부전자전 식이 되었다는 말이다. 만일 이번의 헌재 재판에 김평우 씨가 변호인단의 한 사람으로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그 이름이 지금처럼 일반대중에게까지 크게 알려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탄핵을 탄핵한다”란 책까지 내고 귀국한 그에게 갑자기 찾아온 유명세는 악동으로서의 유명세로 나타났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는 헌재(憲裁) 재판에서의 피의자 변호 중에 왜 헌재가 약한 여자 편을 들지 않느냐는 식의 발언을 했다가 네티즌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부친 김동리의 세 번째 아내 서영은 작가를 부친 사망 시에 재산소송을 걸어 연약한 그녀가 유산 한 푼도 못 받고 쫓겨나게 만들어놓고 나서, 그때 그 일의 주역이었던 그(김평우)가 이제 와서 왜 약한 여자 편을 안 드느냐고 따진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는 뜻이겠다. 그는 미국으로 귀국한 뒤에도 세월호 희생자들이 너무 많은 보상을 받았다고 힐난했는데, 역시 약자 옹호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고 하겠다.    
어떤 네티즌(nama)은 김동리 씨의 소설작법 강의를 수강했는데, 그가 시대착오적 발언을 해서 학생들로부터 수강 거부를 당해 대학강단에서 쫓겨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지금 그의 아들이 왜 부친처럼 시대착오적 언동을 하느냐는 식의 비판을 하고 있음이 보인다. 아마도 1988년의 서울국제펜대회에 참석한 외국문인들을 중심으로 투옥문인 김남주 시인의 석방운동이 추진되고 있었을 때, 당시 한국문협의 이사장 김동리 씨가 오히려 그 석방운동을 방해하고 나섰던 일을 꼬집어 말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투옥 중인 김 시인을 겨냥해 “반체제 행위는 진보에 역행하는 시대착오”라는 다소 억지스런 말까지 했던 것이다. 아버지나 아들이나 기득권층에 대한 충성과 체제옹호적인 헌신만은 부전자전 식의 내림이 아닌가 싶다. 이 사실을 온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는 의미에서 금번의 그 아들의 출현은 선친에겐 전혀 득이 되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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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와 김평우, 부전자전식 내림-임 영 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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