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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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었을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떨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마침 기독교 도교 유교 불교 등에 나타난 죽음을 연구하던 중이었는데, 그것에 관한 책을 보면서 타나토스(Thanatos, ‘죽음에 대한 본능’을 일컫는 정신분석학적 용어)에 휩싸인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심장이 갑자기 멈추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죽음에 대한 반동 형성에서 생긴 열정적인 행동, 무덤을 영원한 안식처라 하면서 죽음을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비유하였던 노자, 오로지 눈 앞의 현실만을 생각하라 하였던 공자, 열반으로 나아갈 것을 권면한 석가모니 등의 생각이 눈 앞의 벽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때 나에게 빛으로 다가온 생각이 있었습니다. 부활을 몸소 보여 주시며 영원으로 나아가셨던 그분이 나에게 다가와 나의 어깨를 감싸 주었습니다. 살고 죽는 것은 나의 뜻이 아니라 그분의 뜻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그분께 가까이 가고 싶었습니다. 나는 그분이 나에게 주신 믿음으로 그분을 만나기 위한 길을 떠났습니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일이 걸릴 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꿈 속에서 오래도록 만나기를 기다리던 그분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길을 가다가 그분의 형상을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나의 생명이 유지되는 한 나는 그분을 만나리라 확신합니다.
내가 그분을 따르는 것은 당신이 세상의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또한 그분이 정치인과 같은 인기를 누려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그분이 하지 않은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그분은 로마 황제처럼 군림하지 않았고, 이스라엘 왕처럼 굴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좋은 집을 구하려 하지 않았고, 화려한 옷을 입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아름다운 요람에서 태어나지 않으셨고, 세상의 명예로운 직업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누구나가 박사학위를 따지 않았고, 생계를 위해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을 치르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집도 없는 나그네 길을 걸었지만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주를 품에 안고 영원으로 나아갔습니다.
나도 그분처럼 하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대기업 회장이 되어 영화를 누리지 않았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지 않았습니다. 멋진 스포츠카를 소유하지 않았고, 웅장한 집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미스 코리아와 결혼하지 않았고, 사업을 해서 큰 돈을 만지지 않았습니다. 비싼 와인을 들며 스테이크를 먹지 않았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차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금을 꼬박꼬박 냈고, 교통 법규를 지켰으며, 가족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엊그제 저녁에는 병원에서 삼교대로 근무하는 아내와 식사를 맛있게 하였고, 건강을 챙기라는 아내의 말에 귀기울였습니다. 생일날에는 아들이 케이크를 들고 와 축하해 주었고, 미국에 사는 딸아이가 바람막이 옷을 선물하였습니다. 아침마다 베란다에 사는 첨지(똥개)의 똥을 치우고, 화초에 물도 줍니다. 매 주 화요일이면 재활용 쓰레기를 분류해서 버리고, 동네 단골 슈퍼에서 필요한 생필품과 과일을 삽니다. 매일 끼니 때마다 설거지를 하고, 아침이면 창문을 열고 집안 청소를 합니다. 오후에는 빨래를 해서 건조대에 넌 후 산책을 합니다. 아파트 단지 중앙에 있는 사백 년 된 느티나무를 보며 줄기 한쪽이 움푹 패였는데도 생명이 유지되는 걸 봅니다. 향나무와 주목나무가 길게 늘어선 아파트 단지 안을 천천히 걸어 봅니다. 벚꽃과 진달래가 지니 영산홍이 고개를 내밉니다. 그 옆에서 이름 모를 화초와 풀들이 생긋이 웃습니다. 온갖 화초들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눈으로 바라보고 귀로 듣고 팔다리를 휘저을 수 있는 것도 다 그분의 은혜입니다. 그분이 내 옆에 동행함으로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이 글을 쓰고 난 후 산책을 할까요, 집안 청소를 할까요? 내일은 선교회원들과 바다낚시를 갈까요, 아내에게 함께 가자고 권해 볼까요? 올해에는 산문집을 출간할까요, 평론집을 낼까요? 매 순간마다 그분과 대화를 나누어 봅니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적어 봅니다.
대통령이 되어 탄핵을 당해 보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정치인이 되어 전국으로 유세를 다니지 않아서 행복합니다. 대기업을 운영하느라 돈 버는 데 신경쓰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세금 적게 낼 궁리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매일 적당한 영감을 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굶지 않고 살아가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태복음 6: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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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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