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메시지/ 예레미야 31:15~20
2018/12/21 14:5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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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의 통곡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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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말에 ‘감탄고토’(甘呑苦吐)라는 말이 있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입니다. 자신에게 유리하면 좋아하지만, 불리하면 싫어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이해 관계에 따라 자신에게 이로우면 다가서고, 이롭지 않다고 판단되면 돌아서는 믿음없는 관계가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헤롯 왕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왕궁으로 찾아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있느냐’고 물었을 때, 위장된 평화로 ‘나도 가서 메시야에게 경배하겠다’며 아기가 있는 장소를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겉으로는 웃으며 말했지만 헤롯은 무서운 살인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결국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베들레험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두살 아래 사내 아이들을 모두 살해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더불어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가 선포되었으나, 베들레험에는 수많은 통곡과 비명소리가 거리마다 골목마다 메이리쳤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일찌기 요셉의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자식이 없어 통곡하던 상항을 기억했습니다. 라헬은 뒤늦게 요셉과 베냐민을 낳지만 베냐민에게는 젖 한번 물리지 못한채 숨을 거두었습니다. 핏덩이 자식을 두고 눈을 감아야 햇던 라헬, 인간의 모든 고통과 참혹함을 다 지켜본 눈물의 여인이, 요셉이 사라지자 무덤속에서 통곡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라헬의 통곡은 새로운 역사의 태동을 알리는 진통이었습니다. 요셉은 비록 노예의 신세로 전락했지만 이집트와 그 가족을 살리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예루살렘과 그 지경의 통곡소리도 인류 구원의 역사를 여는 진통이었습니다.
라마의 통곡소리는 이 시대의 역사에도, 오늘의 우리사회 구석구석에도 수없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청소년들, 실업으로 한숨 쉬는 청년들, 생활고에 지쳐 삶을 비관하는 외로온 사람들,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져있는 소시민들의 현실에 대한 실의와 고퉁을 누가 멈추게 할 수 있습니까? 이들의 통곡을 위로하고 싸매줄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성탄은 우리의 이 아픔과 고통을 위로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가 임마누엘로 우리에게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 세상에는 아픔이 있고, 고통이 있고, 질병이 있습니다. 실패가 있고, 국음이 있습니다. 이 아픔과 죽음을 이기는 길은 주님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삶에 대한 소망과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은 사방에 에워쌈을 당해도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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