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나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양심이 화인(火印) 맞은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과연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흩어져 갔을까! 오히려 자기들은 아무 죄도 없는 것처럼 먼저 나서서 돌을 던지지 않았을까? 그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은 것은 예수님이 땅에 쓰신 글 때문이라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예수님은 사도들을 선택하고 3년동안 천국복음을 가르치셨으면서도 글은 단 한 줄도 남기지 않으셨다. 그래서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가 성전에서 가르치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고 의아해 했다(요 7:15). 예수님이 글을 썼다는 기록은 본문이 유일하다. 그러나 그 글 내용이 무엇인지는 2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로지 사랑을 설파해 왔다. 그러나 신명기 22장 22절에는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그 통간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이라”고 되어 있다.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인은 죽을 운명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만약에 예수님이 그 여인을 사랑의 정신에 의해서 용서하라고 한다면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고, 율법대로 실행하라고 한다면 여태껏 예수님이 설파해 온 사랑은 거짓이 되고 허위가 되어 예수는 가짜 선생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한 처지에 처했다. 그런데 고발자들은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데려오면서도 남자는 데려오지 않았다. 아마도 그 남자가 서기관이거나, 바리새인이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이에 대해, 한 설교자는 예수님이 아무 말씀도 않으시고, 처음에 땅에 쓰신 글은 “그 남자도 데려오라”고 쓰셨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도 그들이 계속 이 여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고 빨리 말하라고 다그치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하시고, 이번에는 또 다시 땅에 “그 남자를 데려오지 않으면 당신들을 율법에 고발하겠다”고 쓰셨을 것이라고 설교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요 12:47). 율법을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고발하겠다는 말에 겁을 먹고 서로 눈치를 보며 하나씩 하나씩 흩어져 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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