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술/ 한국교회 개교회주의 극복과 교회 공동체성 함양 방안
2020/01/31 15:4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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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예수’(보수)와 ‘그리스도’(진보)로 분열

 본고는 지난 1월 14일 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가 주최한 제1회 목회자 컨퍼런스에서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가 발제한 ‘한국교회 개교회주의 극복과 교회 공동체성 함양 방안’ 중 일부를 발췌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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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파주의의 역사적 유래
1) 신학적 요인
교파주의는 한국의 장로교회가 교파 분열이 없었던 유럽 대륙의 개혁교회나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선교를 받은 것이 아니라, 교파 분열이 있었던 미국 교회와 캐나다 장로교회의 영향을 받은 데서 기인한다.
미국 북장로교로부터 선교를 받은 한국장로교는 보수적인 신학의 영향을 받아서, 평양 신학교는 주로 미국의 청교도 신앙을 가진 선교사 사무엘 마펫, 윌리엄 베어드, 언더우드 등을 중심으로 보수교회를 형성하였다. 캐나다 장로교의 선교를 받은 함경도는 보다 자유로운 신학의 영향을 받았고 김재준, 강원룡 등은 보다 자유스러운 신학의 영향을 받았다. 1930년대 「신학지남」을 중심으로 하여 박형룡과 김재준의 신학적 논쟁이 있었다.
해방 이후에 1948년 신사참배 반대파 출옥성도 한상동 목사 중심의 고려측이 갈라져 나가고, 1953년에 예장과 기장이 갈려지게 되었다. 1959년 에큐메니칼 운동 참여 이슈로 인하여 예장 안에서 합동과 통합이 갈라지게 되었다. 1979년에 합동측에서는 교단의 비리문제로 주류에 대항하여 비주류가 갈라져 나가게 되었다. 다시 지방색으로 인하여 호남 정규오 목사를 중심으로 개혁측이 갈라져 나갔다, 개혁측은 지도자 정 목사의 소천 전 유언에 따라 다시 합동으로 되돌아 왔다.
합동과 통합의 분열은 3천만환 사건 이전에 이미 신학적 이슈가 있었다. 박용규의 주장에 의하면 “3천만환 사건이 이전부터 총회 안에 일고 있는 에큐메니칼측(WCC)과 반에큐메니칼측(NAE)의 대립으로 인한 총회 갈등을 가속화시킨 요인이기는 했지만, 분열의 1차적인 요인은 아니었다.” “당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시대적 배경과 사료들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분석한다면 주된 요인은 WCC 문제로 압축된다.”
2) 파당적 요인
1912년 하나의 장로교단으로 시작된 한국장로교는 딱 1백년 만에 300개 교단으로 나뉘었다. 고신, 기장, 통합, 합동, 합동과 개혁, 대신, 백석. 고신 안에서도 고소측과 반고소측 외 장로교 이름을 가진 각종 군소교단이 3백개 이상이나 된다. 이는 군소 보스(boss)를 중심으로 수십 교회 내지 수백 교회가 이합집산함에 따라 큰 교단의 노회 정도의 군소교단이 생긴 것이다.
연합운동에서도 자유로운 신학을 표방하는 KNCC운동에 반대하는 보수교회가 1989년 한기총이란 연합단체를 만들었고, 이 단체는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북한에 사랑의 쌀 보내기운동 등 지난 23년 동안 보수교단들의 연합중심으로 사회봉사운동을 열심히 하였다.  
1989년 한경직 박맹술 임옥 이성택 한명수 정진경 이봉성 김경래 등에 의해 창립된 한기총은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교회 진보교단의 대표성을 가진 교회협(KNCC)이 빈민운동과 인권운동 및 남북통일운동 등을 추진하며 당시의 군사정부와 부딪치자 교계의 새로운 연합기관의 필요성을 느껴 보수를 지향하는 원로들이 만든 단체이다. 처음엔 각 교단 원로들이 개인 자격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곧 교단의 대표성을 가진 연합체가 되었다.
정부가 교계의 대표성을 한기총에 힘을 실어 주자 대표회장 자리를 놓고 욕심을 부리는 교단 정치인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 ‘돈선거’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한기총이 흔들리고, 한국교회에 연합과 일치가 깨어진 배경에는 일부 인사들의 ‘돈질’에 그 원인이 있다.
교계 주변에서 활동하는 직업적 이단감별사들의 생존 전략에 소위 지도자들이 말려 들었다. 교계에서 매달 상당한 액수의 ‘이단대책비’를 거두고 이를 나누어 먹는 직업적 이단감별사들은 자신들이 둥지를 틀고 있던 한기총으로부터 위치가 흔들리자 곧바로 이단 문제를 제기하며 두 세력을 이간질 시켰다. 이와같이 하여 한기총은 지난 2012년부터 금권선거 ‘10당 5락’과 각종 부패와 권력다툼, 이단문제(다락방, 박윤식 등)의 분열 등으로 인해 비리에 반대하던 자들을 중심으로 한교연, 한교총으로 분열되어 나갔다.

한국교회 개교단주의
1) 한 교파 안에서도 예수교단과 기독교교단으로 갈라져 있다.
한국교회 안에서는 같은 교파 안에서도 예수와 그리스도가 갈라져 있다. 장로교에서 예장과 기장, 감리교 안에서 예감과 기감, 성결교 안에서도 예성과 기성, 침례교 안에서도 예침과 기침, 하나님의 성회 안에서는 여의도측과 비여의도측이 갈라져 있다. 한국교회 안에서 한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들의 고집, 교권, 명예욕 때문에 예수(보수측)와 그리스도(진보측)로 갈라져 있는 것이다.
2) 합동측 장로교회의 분열은 소종파 의식에 근거한 것이다.
1980년대 보수 장로교 합동측은 합신측, 개혁측이 갈라져 나갔다. 이들 가운데서도 다시 수많은 소종파 장로회들이 예장 간판을 달고 군소 교파를 세우고 미인가신학교를 우후죽순격으로 세웠다. 문공부에 등록된 예장 교단만 하더라도 3백 여개에 이르렀다. 종교관계를 다루는 공무원들에게 개신교는 윤리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이상한 종교로 낙인찍혔다. 이성적으로 윤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동일교파(예수교장로회) 이름을 가진 수백 개의 교단 등록을 실무자가 취급하게 되었을 때 이들은 개신교란 연합도 할 줄 모르고 서로 헐뜯는 이상한 소종파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3) 보수교회일 수록 교단이 다르면 목회자들이나 평신도들도 전혀 교류가 없다.
보수교회일수록 친구 성직자라고 할지라도 교단이 다르면 큰 장벽이 둘 사이에 끼어 있어 인간적인 교제도 쉽지 않다. 특히 ‘강단교류를 금지하라’는 교단 지시는 이러한 목회자 친구 사이를 갈라놓기도 한다. 그 예가 외국에서 신학공부 하러 가서 유학시절에는 좋은 친구였는데 한국에 돌아오면 교단의 장벽에 막혀서 그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교역자들이 이러하니 평신도들도 교단이 다르면 교회문제나 신학문제에 있어서 소통의 어려움에 직면한다. 심지어 인간 관계에도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종파인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사도신경의 고백의 기초 위에서 신앙표현의 다양성이 인정되고, 신앙적 교제가 개방되어야 한다.
4) 성직자 중심, 남성 위주, 종파적 교회다.
한국교회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성직자가 모든 일을 주도하고, 여성은 봉사만 하도록 하고 남성들이 교회를 운영한다. 그리고 보수주의를 지향할 수록, 신앙고백보다는 파벌적 이익에 따라 운영되어 사회적 공공성(공정성과 윤리성)이 많이 결여된 교회가 적지 않다. 교회와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아 세상에서 소외되고 실패하는 것이 좋은 신앙을 갖는 것으로 왜곡된다. 교회 헌금이 교회 자체 교역자 인건비와 교회 교육관 건립 및 기타 교회 재산 확장을 위하여 대다수 사용되며 빈민구제, 제3세계의 의료 교육 지원 등 사회봉사를 위한 사용은 지극히 미비하다. 교회 운영에 있어서는 성경보다는 가부장적 사고에 지배되고 있다.
5) 한국교회 안에 깊이 들어온 기복신앙은 세상성공이 신앙성공으로 오도하게 한다.
교회 안에서 뿌리 내린 기복신앙은 하나님 신앙과 받는 복을 바로 세상 성공(사업, 출세, 자녀교육, 건강 등 성공)으로 평가한다. 번영과 성공이 바로 기도의 응답으로 보고, 실패와 낙방과 어려운 처지에 들어감 등이 불신앙과 예배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왜곡한다.
십자가 신앙이란 이 세상의 어려움 가운데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깨어 있으며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그와 동행하는 것이다. 십자가 신앙은 세상사에 있어서 불의와 부정직과 비윤리와의 타협의 거절과 자기 비움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십자가 신앙이 생활신앙으로 설교되고 가르쳐야 한다.
6) 목회자들의 언어가 너무 종파적이고 보편성이 없다.
교회는 교회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구원받지 못한 사회를 위해서 존재한다. 이 불신 사회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의 언어와 행동이 종파적이 아니라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 강도를 만나 쓰러진 자를 구해주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행동은 보편성을 지닌다. 오늘날 그리스도교회는 신앙고백은 분명히 하되 우리의 행동과 언어는 세상 불신 사람들에게 소통될 수 있도록 공공적인 언어와 윤리성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도 자체를 위한 구제나 사회봉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진솔히 보여주는 구제나 사회봉사가 결국에는 이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다는 사실이다. 연변지역의 동포들이나 이슬람 지역의 주민들에게 전도 이전에 지속적으로 보내어 주는 사랑의 구호물은 말 없는 전도로 나타나는 사실을 선교사들은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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