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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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24:1-2).

 

코로나 사태를 통하여 얼마나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했으면 교회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내몰렸는지 하나님께 죄송하고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그래서 합당치 못한 예배가 무엇인지 모두 찾을 수 없지만, 주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대로 찾아 회개하고자 합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며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의 의를 나열하며 기도하였지만, 세리는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리새인을 옳다고 하지 아니하고, 세리를 옳다고 하셨습니다(18:9-14).

 

이처럼 주께 합당한 예배는 상한 심령, 곧 회개하는 심령입니다. 이런 심령을 주님께서 가까이 하십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34:18).

 

50:13절 이하는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감사한 마음입니다. 어떤 예배도 감사한 마음 없이 드린다면 그것은 형식적인 예배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얼마나 감사한 마음을 썼을까요? 습관적이거나 형식에 젖지 않았는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뿐만 아니라 드리는 모든 것 역시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하나님께 인심을 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 은혜가 고맙고 감사함으로 성의를 표시하는 것뿐입니다.

 

12:1이하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말합니다.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시는 예배입니다.

 

드린다는 것은 순종을 의미합니다(6:16). 순종은 자신의 뜻을 전혀 사용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내 마음에 들든지 안 들든지 그대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을 통하여 드릴까요? 단을 통하여 드립니다. 신약에서 제단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위에 자신을 드리는 것이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4:23-24).

 

신령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진정은 외식이 없는 진실 된 마음입니다. 성령과 진실 된 마음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6:6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라고 말합니다. 곧 예배시간에 말씀으로 나타내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 시간 상한 심령으로 회개합니다.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했고,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지 못했으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고 우리가 주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큰 은혜를 계속해서 누리게 하소서. ,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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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주께 합당한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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