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규 칼럼] 인생에서 남길 최대의 장사(요한 19:30절)
2020/10/21 11:3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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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규 목사(대림다문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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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첫 장, , 구절은 하나님의 창조이다. 창조는 곧 하나님의 사랑이다. 성경의 마지막장 마지막 구절은 무엇인가? 성경의 마지막 구절은 예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간구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22:21) 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예수님의 은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바울이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 지어다”. 아멘 (6:18)

각 교회에 편지를 쓰거나 개인에게 편지를 쓸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간절히 기 도 했다. 사도 베드로도 마찬 가지이다.(벧전3:18)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중요하기에 이렇게 강조 하는 것일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2단계 거리두기를 거쳐 3단계를 선포하는 것을 고려한다고 하 고 홍수와 태풍으로 그 어느 때 보다 위기가 강조되는 시점에 오늘 우리나라와 국민,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은혜가 왜 그렇게 귀한지 살펴보자.

첫째: 구세주로 오신 은혜.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은혜이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가장 비천한 자리에까지 낮아지심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이 땅에 오신분이 아니다. 존귀 영광 찬양을 받기위해 오신 것도 아니다. 죄를 범한 인간을 구원 하시기 위해 구세주로 오셨다.

둘째: 대신 고난당하신 은혜. 누군가를 대신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돈을 빌려 줄 수는 있어도 대신 가난할 수 는 없고. 힘을 보탤 수는 있어도 대신 수모와 멸시를 당 할 수는 없으며. 약을 사다 줄 수는 있어도 대신 아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셨다.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해 가난해 지셨으며 우리를 치료하기 위해 채찍에 맞으시고 죄를 사함 받을 수 있으며 우리를 온전케 하기 위해 찔림을 받으셨다. (53:5)

셋째: 대신 죽으신 은혜. 죄는 예수님과 결코 상관없는 것이다. 그러한 분이 대신 죽으신 은혜이다. “예수님은 한 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4:15) 예수님은 죽으실 이유도 없으셨고 십자가를 지셔야 이유도 없으셨다.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이유는 누가 부탁 했거나 보상을 부탁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직 모든 것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대신 죽으심으로 용서를 이루시고 사탄으로 부터 승리를 이루셨다, 그래서 다 이루셨다는 것이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구약 예언자들의 예언을 성취하셨다는 선언이다. 이 예언의 중심 과제는 무엇인가. 이 말씀은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는 말씀이다.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을 열어 놓았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자기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는 사람만 내게 합당하다. (10:38) 고 말씀 하셨다.

또한 영생의 길을 열어 놓았다는 말씀이시다. 행복이 가장 큰 소망인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물질적인 부나 권력이 최고의 목적이 아니다. 에덴동산 이후 사람들의 최대의 그를 보낸 뜻을 완성한 것이다.

우리가 위대한 레오나르도다빈치의 초상화 앞에 더 좋게 하려해 봐야 오히려 작품을 그르치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 인간이 그린 작품 중 최고의 예술품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다 이루신 작품에 그리스도의 위대한 작품인 구원에 대해 덧칠해 보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위대한 작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다 이루었다 는 (19:30)라고 말씀 하셨을 때 완성 된 것이다. 우리가 덧붙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의 생명은 참으로 귀하다. 성경은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다. 천하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뜻하는 단어라면 우리는 온 세상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이러한 소중한 생명을 많은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입고 좀 더 나은 집을 마련하는 데 사용 하려한다. 우리가 투자 할 수 있는 대상은 우리의 생명보다 더 가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그것에 우리의 삶을 허비하는 어리석음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 모든 존재에는 존재의 목적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 태어남에는 생()목숨을 다해 이루어야 할 명()이 주어져 있다. 그래서 생명이다. 명이 없을 때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은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낸 이유를 즉 사명을 알고 그 명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지상에서 남길 최대의 유산이다. 지상에서 남길 최대의 투자요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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