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과 사랑 - 배성산목사
2012/10/18 16:1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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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삶에서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가지면서 삶을 영위하다가 정(情)을 주고 사랑하고 다시 이별하며 산다는 것은 삶이 얼마나 힘든 질곡의 과정인 것을 알게 한다. 그러나 “정과 사랑”이 없는 삶은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한 삶이 성장하고 성숙하여 변화하고 발전하는 힘은 어디에 있느냐 하는 점에 이른다. “정과 사랑”은 삶을 풍요하게 하고 따뜻하게 하는 힘이다. 사람에게 생기가 돌게 하고 삶이 넘치려면 삶에 이 감성의 욕구가 넘치어야 한다. 이 삶에서 이성과 감성의 경험이 충족될 때 우리의 삶은 행복을 느낀다. 여기에 정(情)의 감성은 중요하다. “정과 사랑”은 외형적으로는 비슷하나 그 작용하는 힘의 근원과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은 혈연 지연의 육신 중심적인 성격을 갖지만 ‘사랑’은 진리를 바탕으로 한 영혼 중심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 감성의 욕구는 “정과 사랑”이 누구를 사랑하고 싶은 욕구요 또한 누구한테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이다. “정과 사랑”은 삶의 욕구에 두 면으로 한 면은 내가 사랑의 주체가 되려는 것이요 또한 면으로 내가 사랑의 객체가 되려는 것이다. 이러한 감성의 욕구가 어린이었을 때는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지만 어른이 되면 차차로 누구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자라게 된다.

정과사랑


사람이 삶에서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가지면서 삶을 영위하다가 정(情)을 주고 사랑하고 다시 이별하며 산다는 것은 삶이 얼마나 힘든 질곡의 과정인 것을 알게 한다. 그러나 “정과 사랑”이 없는 삶은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한 삶이 성장하고 성숙하여 변화하고 발전하는 힘은 어디에 있느냐 하는 점에 이른다.
“정과 사랑”은 삶을 풍요하게 하고 따뜻하게 하는 힘이다. 사람에게 생기가 돌게 하고 삶이 넘치려면 삶에 이 감성의 욕구가 넘치어야 한다. 이 삶에서 이성과 감성의 경험이 충족될 때 우리의 삶은 행복을 느낀다. 여기에 정(情)의 감성은 중요하다. “정과 사랑”은 외형적으로는 비슷하나 그 작용하는 힘의 근원과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은 혈연 지연의 육신 중심적인 성격을 갖지만 ‘사랑’은 진리를 바탕으로 한 영혼 중심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 감성의 욕구는 “정과 사랑”이 누구를 사랑하고 싶은 욕구요 또한 누구한테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이다. “정과 사랑”은 삶의 욕구에 두 면으로 한 면은 내가 사랑의 주체가 되려는 것이요 또한 면으로 내가 사랑의 객체가 되려는 것이다. 이러한 감성의 욕구가 어린이었을 때는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지만 어른이 되면 차차로 누구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자라게 된다.
“정과 사랑”은 이렇게 내가 정주고 사랑하고 내가 정 받고 사랑을 받는 서로의 주고받는 "정과 사랑"의 마음을 알게 된다. 이렇게 “정과 사랑”은 삶을 풍요하게 하고 삶을 따뜻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을 알게 한다. 사람들은 “정과 사랑”이 다르면서 서로 비슷하게 느끼는 것이라면 정은 인간의 몸에서 느끼는 감성이요 사랑은 마음에서 영혼을 갖는 감성이다. 그 감성이 정에서는 사람의 육체에 태양과 같은 열이라면 사랑의 감성은 사람의 마음에 하늘에서 낸 영혼의 사랑으로 그 차이를 알게 한다. 그리고 정과 사랑은 외형적으로는 비슷하지만 힘의 근원과 역할이 다름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육신은 정에 반응하고 영혼은 사랑에 반응하는 것이다.
예수의 공생애의 마지막 삶에서 고난의 길로 가시는 주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예수의 제자들의 삶의 태도에서 긍정과 부정을 보게 되는데 이는 “정과 사랑”의 차이를 보게 한다. 예수를 따르며 죽기까지 사랑하겠다고 장담하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실로 죽음을 예고하는 과정에서 배신하는 모습을 보게 한다. 인간의 의리나 정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 나가갈 수 있는 범위와 한계를 드러내는 장면을 예수를 부인하는 모습에서 이를 알게 한다. 나중에 사도가 된 바울 역시 육체의 소욕으로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음을 깨닫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말씀했다.
이 본문의 말씀은 우리들이 육신 중심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을 중요시하는 내용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성경 말씀을 듣고 교회생활을 하면 다 하는 것으로 알지만 그 중심에 자기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하는 점은 “정과 사랑”의 주제에서 그 “정과 사랑”의 차이를 알고 이를 극복하려는데 그 의미를 갖게 한다. 육신에 의하여 정으로만 느끼는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변명하고 스스로 이를 위로하며 이것으로 신앙에 안주하다가 그리스도인의 장성한 사랑의 분량에 이르지 못한 체 세월을 허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육신의 정으로 사는 삶의 연약함을 한탄하고 회개하는 과정과 결과를 살펴보면서 “정과 사랑”의 차이를 인식하고 구별하는 경우와 “정과 사랑”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경우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과 사랑”의 차이는 정의 질서와 사랑의 질서를 알아야 한다. 나무가 처음에 잎과 가지를 내고 일정하게 자란 후에는 열매를 맺는 일에 열중하듯이 사람도 육신이 장성한 후에는 영혼을 자라게 하는 것은 사람이 육신으로 정을 나누다가 장성하면 그 영혼이 사랑으로 삶을 거두는 것이 마땅하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양식은 육신의 성장에 도움을 주며 정으로 통하지만 사람의 영혼을 다르게 하는 양식은 영혼의 사랑을 알게 한다. 정은 육신중심적인 자아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줄지라도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성령의 중심적인 자아를 형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사회의 발전을 보면 “정과 사랑”을 혼동하여 윤리적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는 삶의 현상들을 볼 수 있다.
사랑이라는 말은 오늘날 어디에서나 듣는 말로 표현되고 있어 오늘의 많은 영화나 드라마의 주제가 된다. 흔히 우리는 사랑을 말하고 사랑하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부부간 그리고 부모와 자녀간, 사람과 사람사이에 불화와 갈등은 삶에 점점 증폭되고 있음을 본다. 흔히 사람들은 입으로는 사랑한다는 말은 잘 하면서도 사랑의 질서를 따르는 데는 인색하다. 이것은 육신의 안목에서 자기 중심적적이고 이기적인 욕구를 우선하는 처사임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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