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가난한 마음




 
“가난한 마음”은 마음을 쓰는 태도로 사람의 마음씨(心根)를 알게 한다. 생각이나 의식 또는 정신을 외부로 부터 자극에 일어나는 기분이나 느낌을 머리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 기쁨을 같이하며 가슴열고 그와 함께 기도하는 충만한 마음이며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우리들 마음속의 탐욕을 버리는 것이다. 아담과 이브의 타락은 죄이다. 그 죄는 하나님중심의 약속을 어기고 땅의 형편 따라 인간중심의 아집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죄의 그늘에 있게 됨을 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우리 인류의 죄 문제, 죽음의 문제, 인생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신다.
사람들은 흔히 가난하기 때문에 탐욕을 부린다고 하지만, 부자가 되어도 탐욕을 버리지 못한다. 탐욕은 인간중심의 자리이다. 탐욕을 벗어나는 길은 무소유로 가는 가난이다. “가난한 마음”은 마음을 비울 때를 알게 한다. 소유하고 싶은 마음은 유혹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 만물 가운데는 어느 하나라도 목적이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리하여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을 믿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이는 창조하신 대로 세상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인 목적이요 삶의 가치이며 믿음의 길이다.
본문 18절은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시려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라고 말씀하신다. 생각해 보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마음”을 알기에 아무것도 더 이상 바라지 않는 마음이다. 소유로부터의 자유이며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알게 한다.
그런데 세상이 생각하는 복의 기준은 ‘가지는 것’ ‘커지는 것’ ‘많아지는 것’ ‘성공하는 것’ ‘높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보다 낮아지고 적어지는 것은 저주나 운명으로 생각한다. 복과 저주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어느 종교인이나 마찬가지로 인종, 환경을 초월해서 모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 그 출발점은 ‘죄’에서 시작함을 안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는 긍정을 한다. 죄가 똑 같기 때문에 모든 인간들이 추구하고 목표하는 것도 같을 수밖에 없다. 즉 현재보다 더 발전되고 번성하고 나아진 환경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처음 지음 받은 곳(에덴)에서는 인간에게는 자기 목표라는 것이 없었다. 단지 하나님이 주신 환경 속에서 감사하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 할 일이었으나 자유의지가 약속이 지켜지지 않음에서 이를 알게 한다.
그러한 인간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자기 자신에게로 눈을 돌리고 관심을 두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 같이 되는 것’, 즉 현재 자신보다 좀 더 능력 있고 힘 있는 인간 되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죄이다. 따라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들은 죄 아래에서 항상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욕구를 가지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이런 욕구에서 나오는 인간의 행동은 자연히 자기 발전과 번성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에게 그 욕구에는 만족이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더 나은 것을 추구하고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부족한 것이 없고 좋은 것으로 가득한 곳이 하늘나라이라고 착각한다.
‘복 있는 자’는 “가난한 마음”을 갖는다. ‘복 받으려는 마음’으로는 하나님나라는 갈 수가 없다. 사람들은 복을 기대하고 바랄 줄만 알았지 주어진 복에 감사할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미 자신에게 주어지고 채워진 것에 대해서는 복으로 여기지를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 있어서 기쁨과 감사가 있을 수가 없다. 항상 불만이고 불평이다. 이로 인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기쁨을 저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셔서 본문에 보면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고 말씀하신다. 히 8:5절에 보면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는 말씀이다. 저희가 섬기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용서하는 마음은 하늘에 있는 것을 보여주는 모형이고 그림자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심으로서 복의 수준이 달라졌다. 옛날에는 인간이 행하는 일에 복을 주고 잘 되게 하셨지만, 예수님이 오신 뒤로는 예수님이 하신 일로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로 사람의 마음씨로 오시는 기쁜 소식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세상살이에서 자신의 근심과 걱정거리를 하나님이 덜어주기만을 원하고만 있다. 우리는 ‘복 받는 자’가 아닌 ‘복 있는 자’로 그리스도의 피를 받아 사랑의 모형으로 하늘의 그림자인 삶을 알게 한다. “가난한 마음”은 마음 쓰는 태도로 그 마음씨를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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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마음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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