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믿음의 삶 - 배성산목사
2013/09/27 13:3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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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믿음은 그 삶이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정서만 고집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각과 마음을 같이 하여 성숙된 삶으로 그 인격이 신앙생활에 나타나야 한다. 인격은 그 사람의 품격을 말하며 윤리 면에서 도덕 행위의 주체와 심리적으로 지·정·의로 주체가 나타나야 하고 법률로서는 법률적 행위의 주체이어야 하며 사회학적으로 말하면 공동생활의 주체로서의 인격적 삶을 가지고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서 품격을 이루어야 한다. 이는 한 개인으로서 독립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다는 것이 담긴다.

성숙한 믿음의 삶

성숙한 믿음은 그 삶이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정서만 고집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각과 마음을 같이 하여 성숙된 삶으로 그 인격이 신앙생활에 나타나야 한다.
인격은 그 사람의 품격을 말하며 윤리 면에서 도덕 행위의 주체와 심리적으로 지·정·의로 주체가 나타나야 하고 법률로서는 법률적 행위의 주체이어야 하며 사회학적으로 말하면 공동생활의 주체로서의 인격적 삶을 가지고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서 품격을 이루어야 한다. 이는 한 개인으로서 독립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다는 것이 담긴다.
한 인간으로서 뿐만 아니라 믿음이 있다는 것은 ‘저 사람이 예수 믿는 자’라고 말하게 되는 것은 믿음이 성숙된 신앙의 인격을 지닐 때 쓰인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제3일에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심을 예고 할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시되 주여! 그리하지 마옵소서.’하는 것은 성숙한 신앙의 사람이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뜻만 내세운 점에 유의하게 한다. 주님의 뜻을 헤아려 함께하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길을 따르는 믿음을 알게 한다.
여기 주목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은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게 하신다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을 알게 한다. 주님을 따르는 믿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길을 따르는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이다. 생명은 죽음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신앙인이 되려면 '먼저' 와 '나중'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 하는 점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우선순위가 먼저 생명에 있다. 생명을 구하는 일은 영생의 일이요 축복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삶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삶은 생명의 삶이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다. 천하를 얻고도 생명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생명을 얻는 일은 매우 귀하여 최우선으로 그 가치의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삶의 태도를 보게 한다. 예수 삶은 사람이 되어 이 세상의 삶에 오셔서 십자가의 삶으로 친히 솔선하여 생명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일이 무엇인지 하루의 삶을 익히는 것은 하루하루를 진실과 성실로 삶을 익히는 것이다. 이는 삶이란 이해타산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를 믿어 사랑으로 관계를 갖는 “성숙한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다. 미숙하다는 말은 열매가 채 익지 못하였을 때, 음식 따위가 덜 익었을 때, 일에 서툴 때를 (미숙한 솜씨) 말하지만 ‘익숙하다’는 말은 여러 번 하여 보아서 솜씨가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노련하다, 연숙하다, 한숙하다’라 한다. 또한 여러 번 보고 들어서 눈에 환 하다고 하고 늘 사귀어 사이가 가깝다고 말하기도 하며 늘 사귀어 사이가 가깝다하여 친숙하다고 한다. 또한 성숙하다는 말은 초목의 열매가 익음을 말하며 생물이 완전히 자랐다는 경험이나 훈련을 쌓아 익숙해진 상태를 말하며 사물이 적당한 시기에 이르면 자연히 성숙해 지는 것 정한 이치이다.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자리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 예수를 믿는 것은 만사형통의 타산적 계산에 이기적인 욕구충족으로 예수를 믿으려 한다. 교회에 다니는 것은 자기 사업이 잘되라고 이 교회 저 교회 그리고 큰 교회를 더욱 이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봉사만 노리고 교회생활을 하려한다.
한 교회 다니고 봉사하는 것은 지겨운 일이요, 일이 잘되면 감사하고 일이 잘못되고 실패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원망하고 실의에 빠지게 된다. 어려운 시련의 일들이 생기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보다 나에게 힘겨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나를 저주하나 보다 하는 생각으로 신앙의 자리를 두려고 한다. 인생은 고해와 같다 한다. 과연 인생을 생각해 보면 시련을 위해 만들어졌고 시련으로 마침내 구원을 얻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렇게 모든 시련을 인내하며 그 시련 속에서 참 의미를 찾는 자만이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음을 성서는 교훈 한다. 성서에서도 역대 선진들의 시련을 통한 절규를 열거하고 있다. 모세는 “주여 당신은 우리백성들에게 왜 해독을 끼치십니까?” 기드온은 “만일 주가 우리와 같이 계신다면 왜 이 어려운 문제들이 우리에게 생기느냐?”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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