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j-1.jpg
예수님 사역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가르침이시다. 예수님께서는 때로는 대중들에게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비밀을 설파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성전이나 회당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기르치심을 통해서 메시아 현존의 깊이를 더했다.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본질적 차이는 다음과 같다. 선포(kerygma)는 본질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행위 또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명과 부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그 내용으로 한다. 이에 반해 가르침(didache)은 그 의미를 설명하거나 성경적으로 열거된 하나님의 뜻 그 자체를 펼쳐낸 것이다.
복음서에 사용되는 가르침은 대부분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수행한 제자들의 가르침을 지칭한다고 대부분의 학자들이 말한다. 따라서 예수님을 교사라고 칭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는 사실 예수님의 동시대인들이 그의 사역과 태도에서 발견한 첫 번째 인상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이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 가장 많이 사용했던 호칭이 랍비였다.(29회) 물론 제자들은 이런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으며(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할 때 사용한 것을 제외하고!) 오히려 존경심으로 가득 찬 “주(kyrie)” 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 물론 선생으로서 예수님의 새롭게 발견하거나 평가하는 과정에서 기독론적인 관심사는 보존되어야 할 것이나, 그를 종교사나 사상사의 위대한 지혜의 스승으로 폄하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는 어떠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이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선교적 가르침일 것이다. 유명한 선교적 택스트인 마태복음 28장 19절 이하에 나열된 4가지 행위는 다음과 같다. 가다, 제자를 삼다, 세례를 주다, 가르치다. 물론 이는 마태가 복음주의적인 설교를 제외한 선교를 염두에 두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분사형 세례를 받으면서는 제자가 되는 첫 번째 가입의 관점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개종함으로 새롭게 하나님의 자녀로 가입한 자들에 대한 사도들의 선교적인 책임은 결코 종료 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례와 함께 제자를 삼는 두 번째 관점이 곧바로 연결된다. 이는 본질적으로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수반하는 “가르치는 임무”인 것이다. 이러한 임무가 선교 명령의 종합적인 요소가 된다는 사실은 이 행위가 세례의 분사형 안에 조화를 이루고 총체적 임무인 “제자를 삼아라”에 하위개념으로 종속된다는 것을 통하여 표현된다.
초대교회에서의 가르침은 선교영역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도교회에서는 설교 와 부활에 관한 공개적인 증거 외에 가르침은 초기의 교회가 형성된 이후 가장 중요한 사도들의 직분으로 간주하였다. 사도들은 가르침을 통하여 우선은 내용상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파하였으나(행19:8), 약속하신 메시아요 하나님 나라를 선물하시는 분으로서 예수의 인격에 관한 것도 일찍부터 그들이 가르친 핵심이었다(행 5:31, 28:31). 사도들의 선교사역 중에서 바로 이러한 가르침이 가지는 핵심적인 의미는 누가의 표현 뿐 만 아니라 그들의 서신을 통해서도 잘 관찰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살펴 본 결과 필자가 보기에는 신학적으로 다음의 4가지 사항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사도들이 자신을 돕는 자들에게 확고하게 교회를 지도하라고 부여한 가르침의 임무는 이 사역을 위한 지도자적 자격조건과 배치되지 않고, 오히려 이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치는 카리스마는 장로들(딤전4:14)이나 사도들의 안수를 통해 전수되는 데, 이 때에 서품식을 동반하는 선지자적 약속을 통하여 영적인 은사가 나타난다.
둘째는 서품식에서 받은 카리스마적 가르치는 직분은 교회 또는 공동체를 지도하는 전권과 연결된다. 이 전권은 나이와 성품에 구애받지 않고 이를 받은 사람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포함하여 교회 또는 공동체의 모든 지체들이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성령에 의해 부여된 것이며 이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사도들에게 부여된 권세(고후 13:10 참조)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사도교회에서 가르치는 임무를 부여 할 때에는 이와 동시에 가르칠 내용에 관한 교안도 함께 주었다. 이는 사도들, 특히 바울이 민족들에게 설교했던 케리그마 또는 복음이며(골1:23, 딤전 3:16, 딤후 4:17), 또한 이를 바른말의 본(딤후 1:13) 이라는 어느 정도 형식화된 규범으로서 그들에게 위임한 자산이며 더욱 가치 있는 전통이 되었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가르쳐 지키게 하는 선교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