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현수)아버지의 바지랑대
2019/12/23 15:1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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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바지랑대

김 경 수


어느날 아버지는
바지랑대를 높이 세우고
빨랫줄을 매셨다
그 위에는 말씀들이
넉넉한 햇살을 끌고
젖은 영혼들을 말리고 있다

피눈물에 절은 기도들이
하얗게 부서지자
당신은 바지랑대를 더 높이 올리셨다
빨랫줄에 걸려 있는 시름들이
덩달아 올라가고
초라했던 나의첫 기도는
저만치 끝자락에서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다

춥고 움츠린 영혼
가난하고 허기진 사람들
간간히 널려있는 배부르고 살찐 옷가지들
지나가는 낮달이 기웃기웃
빨랫줄에 걸린 사연들을 읽고 있다

시인은 늘 새롭고 유니크한 시세계를 추구하게 된다. 김경수 시인이 상재한 새 시집 ‘기수역의 탈선’에서는 퍽 도발적인 시의 새 지평을 열어가고 있어 페이지를 넘겨본다. 또 다른 색깔의 신앙시가, 고전적 풍경화를 펼치듯 다가오는 ‘아버지의 바지랑대’는 잊혀져가는 우리들의 지난 삶이 애틋하고 그립게 다가온다.
바지랑대가 빨랫줄을 추켜올리는, 아버지의 절절한 기도가 그렇듯 하늘에 올려지는 놀라운 은유가 절창이 되고 있다. 슬픔이나 기쁨도 색깔이 있다. 하얗게 빨랫줄에 걸린 흰 빨래, 달큰한 슬픔이 바지랑대를 타고 곡예를 하고 있다. 그것은 일상을 눈물의 기도를 올리는 아버지다. 쌓이고 쌓이는 기도는 바지랑대 끝을 너머 더 높이 하늘을 향해 키를 키우고 있지 않는가. 그 시름은 빨랫줄에 걸려 바람에 털어내고 있다. 무릎 꿇어 기도한 바짓가랑이, 땀에 절은 속옷도 햇살과 바람에 하얗게 말리고 있다. 가난하고 소박한 삶도 함께, 바지랑대 끝에는 아버지의 소망이 걸려있다.
햇살을 보시며 하나님은 하얗게 널어놓은 아버지의 사연도 읽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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