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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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에 필자의 제자인 유성실 박사는 헐버트의 한국선교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필자는 이 논문을 지도하면서 많은 도전과 함께 중요한 헐버트의 선교사상을 읽을 수 있었다. 유성실 박사가 기술한 논문의 결론 부분을 소개하면서 오늘의 칼럼을 엮고자 한다.
구한말 위기의 시대에 구원투수가 되어준 초기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Homer B. Hulbert)는 통전적 선교사였다. 통전적 선교란 복음전도와 사회참여 활동을 함께 진행하여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선교를 지칭한다.
헐버트가 내한하던 당시의 조선은 선교사로서의 입국은 불가능하였고 복음전파 활동 또한 금지되어 있었다. 이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국가가 안정되면서 감리교 창시자의 “나는 전 세계를 나의 교구로 생각한다”는 말처럼 세계복음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1886년에는 무디(Dwight L. Moody)를 중심으로 해외선교자원학생운동(SVM, 1886년)이 시작되어‘가서 온 민족을 복음화하자, 이 세대에 세계를 복음화하자’는 표어 아래 수많은 학생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으로 선교사로 나갔던 때이다.   
헐버트는 1886년 7월 4일 조선 최초의 근대식 공교육기관인 육영공원(育英公院) 교사자격으로 열악하고 풍전등화와 같았던 조선에 들어왔다. 영어를 주로 가르쳤지만 역사, 지리, 사회, 자연과학, 대산법 등도 가르쳤다. 당시에 한국에는 교과서가 없었으므로 그가 미국에서 미리 준비해온 교육용 자료를 사용하였다. 그는 한국에 온지 3년 만에 최초의 순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저술하였다. 그는 한글이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음성언어로서 쓰기에도 편하므로 장차 영어에서 라틴어와 같은 위치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실제로 그는 한국어와 한글의 우수성을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국내외 언론을 통해 수십 편의 논문을 발표하여 한글의 우수성을 최초로 국제사회에 알렸다. 조선의 근대교육 담당자로서 그는 육영공원에서 근무하면서 제중원 학당에서도 학생을 가르쳤다. 관립영어학교 교사, 한성사범학교 교장, 관립중학교의 교사로도 근무하였다.
헐버트는 육영공원에서 5년 재직 후 사임하고 잠시 미국으로 들어갔으나 1893년에 미국 버나드 대학 총장직 제의도 뿌리치고, 감리교의 선교사 자격으로 다시 조선에 입국하여 선교활동을 하였다. 그해에 볼드윈교회(현재 동대문교회) 2대 담임 목사가 되었다. 1897년 대한제국 교육고문과 한성사범학교의 교장이 되었지만 목회자 역할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선교사들을 다방면으로 도왔으며, 후일 독립운동의 산실이 된 상동교회에서 설교도 하고 상동청년회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유능한 청년들을 지도자로 길러내기 위해 기독청년회(YMCA)를 창립하였다. 또한 1906년 노량진교회 설립 예배를 인도하였다. 당시 일본이 노량진에 수원지를 만든다면서 인근 지역을 보상도 없이 몰수하려 했다. 헐버트는 땅을 빼앗기는 한국인들을 돕고, 기독교를 전파하고자 노량진교회의 공식 예배를 최초로 인도하여, 지역 주민들의 재산권을 보호하였고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노량진교회 교인이 되었다.
1893년부터 헐버트는 배재학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배재학당 내의 감리교 출판부인 삼문출판사의 책임을 맡았으며 교과서와 ‘천로역정’등 많은 기독교 서적을 출판하였다. 1895년 8월에 한글 로마자 표기법을 고안하였다. 이 당시 주시경은 헐버트의 제자로서 삼문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헐버트와 주시경이 함께 연구했던 한글의 ‘띄어쓰기’와 ‘점찍기’는 1896년《독립신문》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헐버트는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아리랑을 최초로 오선악보에 채보하였다. 또한 헐버트는 많은 외국서적과 잡지, 기사를 번역, 기고, 저술, 출판했다. 한국의 역사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조선왕조 역사서 <대동기년(大東紀年)>, 종합 역사서 <한국사(The History of Korea)>, 역사, 풍물, 사회제도를 망라한 <대한제국멸망사(The Passing of Korea)>를 저술하였으며, 관립중학교 제자 오승근과 함께 <대한역사>라는 한글 역사 교과서를 출판하였다.
헐버트의 조선 선교는 교육 선교로부터 시작하였음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은 파란 눈을 가진 선교사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계에 우뚝 솟은 나라가 될 수 있었겠는가? 참으로 위해한 작업을 해 놓으신 헐버트를 우리는 오래토록 기억해야 하겠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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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 선교사의 교육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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