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성경대로 믿지 않는 자들


지난 주일에는 오래동안 소식이 없던 외가로 친척이 되는 형님이 교회를 방문 하였다. 예배 후 여러 대화를 나누는 중에 “이 목사 믿든지 안 믿든지 자유지만 이 책을 읽어보게”라며 대뜸 소책자 두 권을 내민다.
그리고 간단히 저자를 소개하면서 나도 빨리 마음을 돌이켜 자기가 따르는 분의 말을 듣지 않으면 3년만에 모든 것이 끝장나는데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말라며 위협적으로 말을 한다.
그동안 이 분의 소식을 듣고는 있었지만 한생을 목회에 전념하는 나에게 ‘믿든지 말든지’란 무슨 뜻일까? 의아하게 생각하며 책을 받아들고 그 분과 헤어진 후 책을 펼쳐 보았다.
저자는 전북 익산에서 한 동안 교회 간판을 걸고 목회를 하던 분으로 예배 중 나체쇼를 해서 세간을 놀라게 한 사람이다.
수많은 기성교회로 부터 지탄을 받고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워 교회 간판을 떼고 교주 중심의 단체를 구성하여 활동하고 있는데 앞으로 3년 안에 민족 통일이 이루어지는데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나라는 회복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란다. 그러면서 기독교라는 이름을 포기한 이유가 기성교회 목사들과 교인들이 성경을 믿는다고 말하며 정작 믿지 않기 때문이란다.
내용상 문제가 많지만 일단 뒤로 제쳐두고 내가 주목한 단어는 ‘믿는다고 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 이라는 단어이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믿어 주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인데, 육적으로 쓰여진 활자만 보고 문자적으로 이해한다면 첫 출발부터 방향은 어긋나게 될 것이다. 진화론의 허구성이 학자들 간에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창조에 대한 믿음조차 바로 서지 못했다면 근본적인 신앙 설정을 다시 해야 하리라 생각이 되어진다.
창세기 1장에 보면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였다. 그런데 오늘의 기독교인 들은 창조주께서 아름답게 지으신 그 만물을 얼마나 보존하고 돌봐 주는 일에 협력하고 있는가?
창조주이신 그 분을 믿지 않는 자들의 가치관에 덩달아 자연을 파괴하는 주범이 되고 있지 않은가 자책해 본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만물을 하나님이 지으셨다는 말씀을 믿는 믿음이 완전하지 못하다면, 창세기의 첫 장부터 믿지 못하고 인간의 의지로 믿는다고 큰 소리 치지만 믿어지는 것도 아닐 것이며,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있겠는가?
창세기 2장에서는 인간의 창조를 별도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아무래도 인간의 창조가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서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에덴을 창조하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었다고 한다’. 거기에 라는 말은 사람이 서 있어야 할 위치와 자리를 정해주신 말씀으로 믿는다. 사람의 서야 할 위치를 이탈한 것이 오만이요 방종이다.
지난 주 이웃 지역의 교회 행사에 참여 하였다. 행사 전에 강사 소개를 하는 중 “이 분이야 말로 세계에서도 제일로 알아주는 분이신데 우리가 이 분과 함께 한 시대를 산다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이요 축복입니다” 라고 소개 하니 회중은 ‘아멘’으로 화답한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라는 말씀을 믿는다면 어떻게 한 분의 지도자를 그렇게 신격화해서 추켜세우는 것이 역사의 주권자시요 시초이신 하나님을 믿는 자라 자신할 수 있을까? 예배 시간 내내 아멘 소리에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멘 풍년이어서 은혜라고 할까?
아멘이야 말로 순종과 겸손의 절대 표현으로서 신앙인의 필수 미덕(美德)인 셈이다. 그런데 아멘을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교역자 회의에서도 회원들을 호명 할 때 어떤 목사는 ‘아멘’이라고 대답한다. 그래도 되는 것인가? 아멘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겠다는 맹세도 되는데 ‘사람 이름을 부르는 호칭에 아멘이라니 무식이 신령으로 둔갑하는 격이니 이렇게 만든 것이 누구의 책임일까?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서로 책임 전가를 상대에게 돌리고 있다. 이것은 지금의 우리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하나님은 분명 ‘죽으리라’ 하셨는데 사탄 뱀은 ‘죽을까? 하노라’로 변질시켜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키고 말았다.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니기를 소원해 본다. 아담과 하와를 꾀이던 사탄은 지금도 복음을 변질 시켜가며 우리를 교묘하게 속여 실족하게 하고 있음을 말씀을 떠올리며, 비록 기성 교회가 싫어서 교회 간판을 접었다고 하는 한 이탈자의 괴변으로 듣기에는 나의 책임 또한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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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 믿지 않는 자들 - 이선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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