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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대, 웃으라고 꽃피지요”
    언제부터인가 저희가 지하철역과 분당선 전철, 교회 외벽에 교회 이미지 광고를 했습니다. 아름다운 문구를 새겨서 제 사진도 넣고 예배 시간도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대형교회가 자꾸 개교회주의적 홍보에 너무 치우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공익적 홍보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 사진도 빼고, 예배 시간도 뺐습니다. 다만 어떤 이단이나 사이비 단체의 홍보가 아니라는 의미로 작게나마 새에덴교회 이름은 넣어놨습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더 많은 상처를 받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상처는 그 사람을 절망의 바닥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래서 이 작은 한 문구를 통해서 정서적, 사회적 위무를 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헤밍웨이는 그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현대인에게 질문을 하나 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죄가 어떤 죄인가? 그것은 희망을 잃는 죄”라고 했습니다. 다른 죄는 다 용서받아도 희망을 잃은 죄는 하나님께 용서를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쓴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다’라는 시집에 수록된 ‘꽃과 예수’라는 시가 있습니다. “너의 상처를 내게로 가져오면 꽃이 되고 / 너의 눈물을 내게로 가져오면 진주가 되고 / 너의 한숨을 내게로 가져오면 노래가 되리니 / 아무리 힘들어도 너를 버리지 마라 / 피투성이가 되었더라도 / 너를 끌어안고 내게로 오라 / 세상이 너를 버렸을지라도 / 나는 너를 꽃처럼 껴안고 / 이 추운 밤을 지나 / 봄날의 아침을 맞으리니.” 시적화자가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상처도 꽃이 되게 하고 우리 눈물을 진주가 되게 하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한숨을 가져와도 노래가 되게 하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어 피투성이가 되고 세상에서 버림받은 존재가 되더라도 희망만큼은 버리지 말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의 상처와 아픔을 꽃이 되게 하시며 또한 우리에게 꽃처럼 다가오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인생이 한 밑바닥에 있어도 그 밑바닥에서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게 하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바닥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아니, 지금도 인생 밑바닥에서 절망과 탄식을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밑바닥에서 꽃이 피어나게 하는 분이십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에게 희망을 갖다 주기 위해서죠.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번 웃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봄이 왔으니 곧 꽃이 피게 될 겁니다. 매화와 목련, 진달래, 개나리 순으로 꽃이 피겠지요. 그런데 그 꽃은 언덕 위에서만 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밑바닥에서도 피어납니다. 아니, 바위틈 밑바닥에서도 피어납니다. 꽃 피는 모습을 보고 기분 나빠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암절벽 위에서나 언덕 아래 밑바닥에 피어 있는 꽃은 더 아름답고 귀하게 보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항상 예수님은 우리 마음속에 꽃 한 송이로 피어난다는 것입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그 꽃송이 하나로 봄이 오도록 하기 위해서이지요. ‘꽃과 예수’라는 시에서 “너를 꽃처럼 껴안고 이 추운 밤을 지나 봄날의 아침을 맞겠다”고 한 것처럼 저 역시 인생의 맨 밑바닥에서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한 송이 꽃으로 다가가고 싶습니다. 실제로 저는 그렇게 웃으며 살죠. 제가 진지한 설교를 하거나 사색에 잠길 때를 빼놓고는 항상 웃는 얼굴입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웃으며 악수를 하고 반갑게 맞습니다. 그때 제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 있죠. 희망의 꽃이 화사하게 피어납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주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대, 한 번 더 웃어보라고요. 밑바닥에서도 다시 한번 희망을 가져보라고요. 눈 한번 돌려보세요. 온 세상이 다 꽃피는 봄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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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3-10
  • [언론회 논평] 의사 선생님, 어찌 그러십니까?
    정부가 국민의 의료 혜택을 늘이기 위하여 의대생 정원을 늘린다는 정책 발표 후, 의료계는 반발해 왔다. 그러다가 19일 서울의 ‘빅5’(서울대, 세브란스, 서울아산, 삼성서울, 서울성모)병원의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기 시작하면서, 환자들의 불안은 가시화 되었다. 환자들에게 있어, 의사는 직업인 이상의 존경의 대상이며, 질병 치료에 대한 큰 기대를 하는 선생님이다. 따라서 그런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나, 정치적 투쟁을 한다는 것은, 매우 불행하며, 환자들은 버림 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공의가 절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국가 가운데 최하위라고 한다. 즉 인구 1,000명당 전공의 숫자는 그리스 6.3명, 스페인 4.5명, 스웨덴 4.3명, 호주 4.0명, 뉴질랜드 3.5명, 영국 3.2명, 미국 2.7명인 것에 반하여 한국은 2.6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각 나라들은 수년간 꾸준히 전공의를 늘려왔다. 미국은 20년간 38%를 늘려왔고, 프랑스는 2000년 3,850명에서 2021년 1만명으로, 영국은 2002년 4,300명에서 2021년 9,280명으로, 독일은 2015년 10,728명에서 2022년 11,752명으로, 일본은 2007년 7,625명에서 2019년 9,330명으로, 호주도 2010년 2,662명에서 2019년 4,022명으로 늘렸다. 그러나 한국은 1998년 3,507명에서 현재까지도 그 숫자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병원에서 전공의는 수술실, 응급실, 중환자실을 도맡고 있기 때문에, 그 전공의들이 빠져나가면 의료 공백과 환자들에 대한 심각한 피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때문에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의사는 환자의 곁을 떠나면 안 된다. 의사는 다른 직업과 다르게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고, 아픈 환자들에게는 절대적 의존의 대상이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에 반대한다고, 함부로 의료 현장을 떠나는 것은, 간접 살인과 같은 것이다. 더군다나 정부의 정책이 국민들에게 의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게 하겠다는데, 오히려 의료계도 찬성해야 되는 것 아닌가? 물론 의료계의 주장대로 의료의 질이나 국민들의 건강보험료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일견 타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의료진이 진료 현장을 팽개치듯 떠날 만큼의 명분은 아니라고 본다. 의사들은 현대적 의미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즉 “제네바 선언”이다. 이에 의하면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데 내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로 시작하여, ‘나는 환자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가장 먼저 고려할 것이다’ ‘나는 환자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존중할 것이다’ ‘나는 최고 수준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자신의 행복한 삶, 잠재력을 키울 것이다’라고 선서(宣誓)한다. 의료진은 환자들에게는 질병 치료의 희망이다. 이를 뒤집어서 말하면, 환자 없으면 의사는 아무 것도 아니다. 지금 국민들의 76%는 의사의 숫자를 늘리기 위하여 의대 정원 늘리는 것에 찬성하고 있는데, 이런 국민들의 바람을 저버리고, 환자들 아픔의 신음 소리를 외면한다면, 이를 어찌 의사(醫師)라고 하겠는가? 의사(疑師)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이런 의료 대란은 일어나지 말아야 하며, 혹시라도 여기에 가담할 의료진이 있다면, 돌이켜서, 환자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 주지 않기를 바란다. 정부도 의료계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통하여 국민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조처해 주기를 간곡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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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4-03-05
  • [언론회 논평] 이만희 신천지교에 대한 언론의 보도 자제해야
    우리나라에서 신흥 이단으로 지목되는 곳이 이만희가 교주인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이 있다. 신천지는 불과 17년 전까지만 해도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7년 모 공중파 방송의 ‘PD수첩’을 통해서 그 부정적 실상이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2015년에는 CBS가 신천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더욱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기독교계에는 초교파신문(지금은 해산됨)이란 것이 2005년경부터 나타나 약 3년간 신천지 교인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일부 교계 언론사 기자로 활동하는 등의 문제로 한동안 떠들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신천지가 우리 사회에서 크게 유명(?)해진 사건이 벌어졌는데, ‘코비드19’가 한창 유행하던 2020년 3월 2일 신천지의 이만희 교주가 기자회견을 열어 기자들 앞에서 사죄한다며 큰 절을 두 번씩이나 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이때 이만희는 (신천지 관련된 조사에서 문제가 있는 것에 관하여) ‘이 모든 일에 사죄하고 최대한 정부를 인적, 물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하였다. 교주가 직접 나서서 사죄하는 것은 그야말로 흔치 않은 장면이다. 신천지에 대하여 ‘나무위키’에 보면, 신흥 종교이며, 사이비 종교이며, 기독교계 이단이며, 반사회단체로 소개되고 있다. 또 목적이 명목상으로는 세계평화, 평화통일, 봉사이지만, 사실상으로는 지도부의 금전적 이득과 선민사상, 반지성주의, 전체주의라고 표현하고 있다. 신천지교를 세운 이만희는 1931년생으로, 정통 교회를 다닌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박태선의 천부교, 유재열의 장막성전을 전전하면서, 오늘의 신천지교를 설립한 것이다. 어쩌면 신천지는 사이비•이단 족보의 끝판왕이라고 할 정도이다. 정통교회에서는 신천지를 일찌감치 이단(異端)으로 규정하였다. 예장 통합 교단이 1995년, 기성 교단이 1999년, 예장 합신 교단이 2003년, 예장 고신 교단이 2005년, 예장 합동 교단이 2007년, 예장 대신 교단이 2008년, 기감 교단이 2014년에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신천지 집단은 정통 기독교의 신론, 기독론, 구원론, 종말론, 계시론과 다르며, 교주를 신격화 하는 것을 이단으로 명백하게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신천지가 이단으로써 혹세무민하는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신천지를 보도하는 언론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지난 1년간(2023년 1월 1일~12월 31일까지) 신천지에 대하여 보도한 언론을 찾아보니, 30여 개에 이르고 있다. 그러한 언론 가운데는 각 지방에 널리 알려진 언론사들도 여럿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언론이 각각 1년간 보도한 건수는 10~560개에 이른다. 이들이 전체 보도한 건수는 1,240건이 넘는다. 그중에 가장 많이 보도한 언론은 천지일보로 무려 564개의 신천지 보도를 하고 있다. 어느 언론들이 정통교회의 활동에 대하여 이렇듯 많이 보도하고 있는가? 신천지에 대하여 보도하는 언론은 전국에 걸쳐 있는데(표1 참조) 신천지가 전국에 지파별로 산재한 것과 그 지역 언론들이 긍정적으로 보도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신천지가 대대적으로 언론 보도에 치중하는 것에 대하여 신천지 내부를 잘 알고 있는 전문가에 의하면, 첫째는 신천지가 주도적으로 언론을 만든 것들이 있다. 둘째는 언론사나 기자 요원 가운데 신천지 교인이 있는 것으며, 그들이 적극적으로 보도에 관여한 것이다. 셋째는 기사를 돈을 주고 사는 경우들도 있다고 한다. 뿐만이 아니다. 광고를 돈을 주고 사서 이를 자신들의 홍보 수단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신천지가 아무리 기발한 방법으로 포교를 한다하여도, 그들에게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런데 이런 한계점을 뛰어넘게 하는 것이 언론의 잘못된 역할 때문이다. 언론들이 신천지와 무슨 관계가 있기에 끊임없이 많은 보도들을 해 주는가? 그것은 돈과 신천지 조직과의 밀착 관계로 보는 것이 합리적 의심이다. 언론이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주는 보도 기능을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신흥 이단집단인 신천지를 홍보하는데 사용한다면, 이는 바른 언론의 기능을 상실한 것과 다르지 않다. 신천지가 주도적으로 언론의 형태로 만든 것이야 신천지 내부에 변화가 오면 시들해지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지역에서 전통과 역사를 가진 언론들이 이런 행위를 하고 있다면, 이는 언론의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책무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재고해야 한다. 그리고 각 지역민들은 단합하여, 불건전한 언론 보도에 대한 자세를 물어야 한다. 언론이 어찌 이단들의 나팔수와 전파자의 역할을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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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5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이상길 목사의 ‘사순절의 묵상’(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희생을 기리며 자신을 돌아보고 영적 성장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주님의 발자취를 살펴보며,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조명하고 그 발자취를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묵상하면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며 더욱 경건한 삶을 이루어 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은 우리가 지은 죄와 받을 고통을 대신 당하신 것이었습니다. 내가 죽을 그 십자가, 내가 매달려야 할 그 자리에 예수님께서 대신 담당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 값을 대신 담당하신 예수님께서는 내가 받을 영원한 형벌, 사망과 수치, 내가 받을 부끄러움을 다 당해주셨습니다(마 26:67, 27:30).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율법의 요구에 마침표를 찍는 위대한 사건이었으며, 우리는 이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요 1:12-13; 14:6).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은혜를 깨달아, 구원 받은 자로서 저 영원한 것을 소망하면서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고난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서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성도가 참으로 성숙한 성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십자가만 바라보고 살아갈 때, 예수님의 가신 고난의 길을 따를 수가 있습니다. 모세도 이와 같은 마음으로 고난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 우리의 자아가 죽어야 고난을 담당하고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날마다 죽노라”고 결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피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어렵더라도 고난을 짊어지고 소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십자가에서 이미 죽은 사람들입니다(갈 2:20).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 고백이 믿음입니다.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면 근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십자가만 알고, 십자가만 자랑하고, 십자가만 높이고, 십자가만 믿고 나아갈 때 우리는 강해지며 힘과 능력을 얻게 됩니다. 우리도 오직 십자가만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에는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만이 나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십자가만이 내 죄를 씻고 새롭게 합니다. 십자가만이 나를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십자가를 붙들면 내 인생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십자가만 믿으십시오. 사순절을 맞아 우리는 항상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묵상하며, 우리도 어떻게 하면 그 고난에 동참할 것인가를 고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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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녁형 인간이 아침을 깨우다”
    저는 원래 저녁형 인간으로 태어난 것 같습니다. 어린시절 시험공부를 해도 주로 날을 새기도 했고 낮에 잠을 잤습니다. 낮에 공부를 하는 것보다 밤을 새워 저녁에 공부하면 서너 배 이상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광주신학교를 다니며 백암교회를 개척할 때도 깊은 저녁에 공부를 했습니다. 오후에 학교를 마치고 오면, 부지런히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며 전도를 하고 깊은 밤이 돼서야 레포트를 작성하고 공부했습니다. 깊은 밤에 공부를 하면 그렇게 머리에 쏙쏙 잘 들어오는지 모릅니다. 저녁에는 그렇게 온몸에 활기가 넘치고 총명스러운데 새벽이 되면 맥을 못 추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새벽기도를 인도해야 하잖아요. 어떨 때는 저를 깨우는 정 권사님께 “왜 나를 깨우냐고, 권사님이 새벽기도 좀 인도하시면 안되냐”고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정 권사님이 천막교회당으로 가 버리세요. 그러자 또 교인들이 와서 깨우는 것입니다. “전도사님, 어서 일어나씨오. 새벽기도 설교해 주셔야지요.” 그럴 때 저도 모르게 짜증을 내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짜증을 받아주신 교인들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단 한 번도 새벽기도를 빠져본 적이 없습니다. 한동안 새벽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책들이 많이 나왔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책을 읽고 “나는 왜 이러지? 새벽형 인간이 성공을 한다는데 나는 왜 저녁형인가?”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저뿐만 아니라 정말 저녁형 인간이 많이 있더라구요. 저녁을 아주 유용하게 쓰고 효과적으로 쓰는 사람을 봤습니다. 저녁이 되면 가슴에 별이 들어오고 달이 들어와서 시를 쓰는 사람도 있고, 작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저녁에는 은하수의 별들이 이야기를 가지고 와서 밤을 새워 소설을 쓰게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저녁형 인간도 성공한다’라는 책을 써 보고 싶은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저녁에 일을 하고 낮잠을 잡니다. 그러나 저처럼 저녁에 독서를 하고 새벽에 일어나려면 얼마나 몸이 무겁겠습니까? 그래도 제가 구미동 목회시절까지는 모든 새벽기도를 직접 다 인도했습니다. 한얼산기도원에 가서 새벽 4시까지 철야기도회를 인도하고, 우리 교회에 와서 또 5시 새벽 기도를 인도한 적도 많았습니다. 목포에서 집회를 마치고 야간열차를 타고 와서 또 새벽기도를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또 옛날에는 부흥회를 가도 저녁집회, 새벽집회, 낮집회를 다 인도했습니다. 젊을 때는 그걸 다 감당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왜 그렇게 새벽이 힘든지요. 그래서 저는 새벽집회 대신 밤 특별집회를 인도하게 됐습니다. 밤 특별집회를 인도하면 저는 펄펄 납니다. 그러니까 특별새벽기도 대신 밤 작정 기도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학기를 맞아 자녀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해서 특새를 하게 된 것입니다. 자녀들이 주로 저녁 시간에는 학원을 가니까요. 진짜 저는 잠과의 전쟁, 새벽과의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평소에 늦게 자던 사람이 일찍 잔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늦게 자는데도 기본이 3시에 깨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2시에도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합니다. 그때 만약에 누워서 자버리면 더 몸이 무거울 것이기에 책상에 있거나 또 복도를 걸어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맑은 정신으로 새벽기도를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한 다윗의 고백이 더 다가옵니다.(시108:2) 이러기를 반복하면 몸이 축나겠죠.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던 다윗도 70세에 죽게 된 것입니다. 어쨌든, 그래도 이번 한 주간은 야행성이고, 저녁형인 제가 새벽을 깨우고 새벽을 울리는 한 주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새벽에 일어나 교회에 오니 얼마나 눈가에 잠이 오겠습니까? 그래도 제가 설교를 워낙 쉽게 하고 짧게 하니까 제 눈에 조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아이들이 그렇게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은 저녁형 인간이 새벽을 비추고, 깨우고, 울리는 역설적 주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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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4-03-03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강성률 목사의 ‘억지 같은 일’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마27:32) 신앙인들이 때때로 자기의 원대로 무슨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반면에 자기 뜻대로 될 때는 그것을 은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것도 은혜일 수 있지만 성경에 나오는 참된 은혜는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본문의 구레네 사람 시몬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몬이 어떻게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가는 곳에 왔는지 알 수 없지만,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넘어지고 일어서는 것을 반복하자, 예수님의 십자가를 시몬이 대신 지도록 하였습니다. 시몬은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했지만, 로마라는 절대 권력 앞에서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적은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억지로 졌지만, 그가 그것을 짊어졌을 때는 ‘짊어지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짐으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을 좀 더 편안히 오르실 수 있다는 성령의 위로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당시에 느꼈던 소감을 그의 아내와 아들들인 알렉산더와 루포에게 전하여 주었습니다. 그러자 온 가족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억지 같은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까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아버지 품에서 계속 사랑을 독차지 하며 살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를 시기하였던 형님들이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 넘겼습니다(창37:27-28). 그는 형님들에게 팔지 말아달라고 애걸복걸하였습니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려가 노예생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서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또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서 2년 동안 있었지만, 최후에는 바로의 꿈을 해석하여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당시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일대에 7년 흉년이 들었지만, 애굽은 물론 가나안에 사는 아버지와 형제 가족 모두를 구원하게 됩니다(창세기43장-47장). 억지 같은 일들이 그야말로 큰 은혜가 된 것입니다. 그 외에도 성경은 그러한 많은 일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사울의 아버지인 기스의 집에 나귀가 도망을 갔습니다. 참 좋지 않은 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사울은 사무엘을 만나게 되어 기름 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삼상9:1-10:27). 그랬던 사울도 나중에는 타락하여 그의 충성된 신하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핍박을 피하여 블레셋의 시글락에 머물렀습니다.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는 그가 이스라엘과 싸우러 갈 때에 다윗도 함께 하도록 명하였습니다(삼상28:1). 하지만 그를 싫어하는 방백들 때문에 싸우러 가지 못하고 시글락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돌아와 보니 그곳은 아말렉의 침투를 받아서 그의 처자식은 물론 부하들의 처자식과 재물까지도 약탈 당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다시 가서 모두 회복했습니다. 그가 블레셋 방백들의 반대를 받아 이스라엘과 싸우러 가지 않게 된 것이 블레셋 방백들의 억지였지만 그 일로 인하여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처자식과 재산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삼상 27장~30장). 신약에서는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다고 하셨습니다(막1:12). 예수님께서 자원하셔서 광야로 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몰아내신 것입니다. 그곳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고 사탄의 시험을 이긴 후 천사들의 수종을 받으셨습니다. 바울은 전도 여행을 아시아 지방으로 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허락지 아니하므로 방향을 마케도냐로 돌렸고 그곳에서 루디아 같은 신앙인들을 만나서 빌립보 교회를 세웠습니다(행16).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신앙인들에게 모든 일에서 유익만 되게 해주시지만, 특별히 억지 같은 일들이 은혜로 임할 때가 있습니다. 생활 가운데, 사람과의 관계에서 원하지 않는 일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잠3:6) 그 이름을 찬송하기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욥3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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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순수하면서도 광활하렵니다.”
    작년 연말쯤이었던가요? 유럽 코스테 측으로부터 강사 요청 공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송원석 비서목사를 통해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멀리 비행기를 타고 다녀오는 것도 부담스럽고, 젊은이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도 역시 어색함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몇 주가 흘렀는데 갑자기 코스테 대표이신 한은선 목사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목소리라도 들어보려고 안부 전화를 드렸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강사 결정이 다 되었습니까? 지금이라도 간다면 제가 설 자리가 비어 있습니까?” 그랬더니, “아이고, 소 목사님이 오신다고 말하면 얼마든지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듣고 갑자기 제 안에서 멋진 오해 혹은 거룩한 착각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몇 년 동안 쉬다가 작년부터 코스테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한번 가봐? 젊은 유학생들에게 말씀을 전하면 얼마나 소통이 되고 내 가슴속의 정열이 얼마나 전달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며칠 후 송원석 목사님을 통해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대신 저는 밤 집회 한 번 하고 낮 특강 목회자 세미나를 하는 대신에,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낮 특강은 홍윤기 목사님이 맡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코스테 본부에서는 얼마든지 좋다고 해서 홍윤기 목사님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갔습니다. 제가 바쁜 중에도 말씀을 많이 준비해 가지고 갔습니다. 준비한 말씀을 잘 전달하게 된다면, 저나 유학생들에게 인생의 플롯 트위스트(plot twist,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간에 리부트(reboot)가 터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저도 오랜만에 가는 집회이기 때문에 제 사역의 신세계를 이루고 원정 V로그(Vlog)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시간의 제약이 있었습니다. 저 다음에 또 한 분의 스피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최 측에서는 저에게 미안했는지 10분 이상 더 하셔도 된다고 이야기를 하였지만, 그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아마 제가 늦게 간다고 해서 그렇게 스케줄이 짜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어쩔 수 없이 준비해 간 말씀을 축약해서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젊은 유학생들과 소통을 나눌 수 있어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첫날 저녁, 제가 집회의 포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제 안에 있는 젊음의 야성과 열정이 그들에게 순수하면서도 고스란하게 전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너무 피곤해서 집회가 끝나자마자 바로 나왔지만, 제 메시지를 듣고 오래까지 남아 기도하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튿날 저는 목회자 세미나를 통해 아무래도 닫혀 있을 수 있는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현대 목회 트렌드와 미래의 흐름을 이야기하며 그럴수록 생명을 붙잡고 가치를 붙잡고 무너져 가는 교회를 세워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회가 되는 대로 다른 분들의 메시지도 들었습니다. 역시 후배 목사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메시지는 대부분 단순하고 순수한 면이 많았습니다. 그 단순함과 순수함이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시키는 것도 보았습니다. 물론 순수하다 보면 앳되게 보이는 면이 있기도 했습니다. 순수함과 함께 폭이 넓고 지경이 광활한 면도 있어야겠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제가 생각한 대로 좀 연륜이 많은 목사님들의 메시지를 들어보면, 역시 앳된 면은 보이지 않고 나름 노련하고 지경이 넓고 깊은 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목요일 오전에는 홍윤기 목사님이 유학생들에게 특강을 하였는데, 아주 젊고 단순함을 유지하면서도 폭이 넓고 지경이 광활한 면이 있음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제가 첫 안타를 쳤다면, 홍 목사님은 홈런을 친거죠. 저는 이번 코스테 집회를 통해서 “내가 더 젊어져야 되겠구나. 더 순수한 메시지를 전해야 하겠구나”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장엄하고 폭이 넓고 더 지경이 광활한 설교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았습니다. 젊고도 웅장하며 순수하고 단순하면서도 지경이 넓고 광활한 설교 말입니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수년 동안 가지 못했던 코스테 집회에 오랜만에 가서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그들에게 강렬한 도전을 주었던 것도 나름 의미가 있었고, 후배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고 또 선배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다시 한번 다짐을 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더 순수하면서 깊이 있고 폭이 크며 광활하고 웅장한 설교를 하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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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5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이상길 목사의 ‘믿음은 행위로 나타나야’(약 2:14-18)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앞뒤 면과 같이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과 행위는 같이 가야 하는 것이기에 믿음은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활 속에 행위로 나타나야 참된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믿음과 행함 사이에서 많은 고민이 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많은데,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알 수 없다는 말들이 들려오고 있지 않습니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행위로 증거 되는 믿음인 것입니다. 행위가 동반되어야 참 되고 올바른 믿음이므로 믿는 우리는 오직 행하는 믿음으로만 살아야 하겠습니다. 26절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행위가 따라가야 살아있는 믿음이라는 것이지요. 믿음이 원인이라면 행위는 결과입니다. 믿음이 나무라고 한다면 행위는 열매입니다. 믿음과 행위는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아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야 생명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합 2:4, 롬 1:17)는 말씀은 말씀의 생활화를 말합니다. 믿음은 생각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삶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삶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실천하는 삶은 믿음을 활성화시켜주고, 더 큰 믿음을 낳습니다. 말씀을 실천하는데서 만족이 있고, 감사가 있고, 헌신이 있고 기쁨이 더 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율법을 잘 지켜 의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믿고 감사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시기에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 행동을 다스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속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믿음을 생활화할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내게 있는 믿음이 비록 작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그 믿음을 근거로 해서 행동으로 옮길 때 위대한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믿음에 행동이 있을 때에 영력이 생겨나고,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믿음은 합당한 열매로서의 행위가 나타나야만 합니다. 우리는 입술만의 신앙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행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입술의 신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신앙도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행위가 없으면 이 역시 죽은 신앙입니다. 사변적인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을 한 분으로 믿는 믿음은 바르지만 그것이 단지 지식에 멈춘다면 그러한 믿음은 헛되고 잘못된 믿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속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 생명의 실제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이 실천이고, 그것이 실행이고, 그것이 행위인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지만, 행함은 눈에 보입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은 보이는 행동으로 자신을 나타내게 됨으로 그 사람의 발자취를 통해 믿음이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행하는 믿음으로 살아서 믿음이 온전케 되고 믿음의 열매들을 풍성히 맺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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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살아 있기에 글을 쓴다”
    확실히 요즘은 옛날 총회장 시절보다는 달리 조금 덜 바쁩니다. 총회장과 한교총 대표회장으로 섬길 때는 분초를 쪼개가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마음은 바쁩니다. 마음이 바쁘다 보니까 때로는 불안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존재적 불안은 아니고 뭔가를 준비하지 못하고 미리 할 것을 해놓지 않았을 때 불안한 마음이 찾아옵니다. 예를 들어 설교 준비가 안 되었다든지 강의안이나 칼럼 등 써야 할 글을 미리 쓰지 않으면 심리적 불안이 오게 되는 거죠. 요즘 돌이켜 보니 시를 많이 못 쓴 것 같았습니다. 물론 ‘문학나무’에 성경인물 시를 계속 쓰고 있습니다마는. 이번 주 같은 경우는 시를 많이 못 쓴 것에 대한 불안감이나 압박감 같은 것이 들어 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시는 고독해서 쓰기 시작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물론 고독해서 시를 쓰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본인이 살기 위해서 시를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 뿐만 아니라 일반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심해서 쓰다가 보니까 나중에는 살기 위해서 글을 쓰고 그 시와 글이 자신을 이끌어가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이 시를 안 쓰고 문인이 글을 안 쓰며 가수가 노래를 안하고 목회자가 설교를 안 하면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것처럼 글을 쓸 때 자기 인식을 하게 되고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존재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글과 삶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면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자신의 존재가 어떠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죽은 자는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불안을 느끼는 것 자체가 살아있는 것입니다. 죽어 있으면 이런 불안도 느끼지 못합니다. 이 불안이 끊임없이 창의적 세계로 가게하고 또 끊임없이 생명의 글을 쓰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 쓰는 사람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 글을 살고 있는 사람이 글이 안 써지면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해지겠습니까? 저는 전업 시인이 아니기에 시를 써도 되고 안 써도 됩니다. 이번 주는 시는 그만두더라도 목양 칼럼(아포리즘)이 잘 떠오르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먼저 칼럼을 써 놓았습니다.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아들과 ‘건국전쟁’에 대해 서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글을 썼는데, 아들에게 보여 주었더니 좀 어색한 것 같다고 해서 다른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다시 새로운 글을 쓰려고 하니까 깊은 사유(思惟)를 해야 했습니다. 문득 저는 글과 시, 시와 생명, 그리고 삶과 시간을 연결하는 이야기를 구상해 보았습니다. 분명히 저는 시 때문에 사는 것은 아닙니다. 시를 써도 되고 안 써도 됩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까 반드시 시를 써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시가 아니라도 반드시 글을 써야 하지요. 설교문이 됐건 칼럼이 됐건 기고가 되었건 글을 써야 합니다. 제가 글을 쓸 때 창의적인 존재가 됩니다. 창의가 없는 한 저는 죽은 존재와 다름없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글을 써야 합니다. 아니 글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 글이 어느 때부터 인가는 저를 창의적인 세계로 인도하고 창의적인 공간으로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사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한도 내에서 제한적으로 사는 게 육신의 삶입니다. 물론 우리는 부활을 하고 예수 믿는 자는 영원히 천국에 거하지만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글을 써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글과 함께 사는 사람이고 글을 사는 사람이고 글의 인생이 되고 글의 생명이 됩니다. 살아있으나 사유하지 못하고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죽은 존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살기 위해서 오늘도 글을 쓰고 시를 씁니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목양 칼럼을 쓰게 되고 새로운 시를 써야겠다는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써야 할 글이 많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어서 적어도 제 키만큼의 책은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은 턱없이 모자란 것 같습니다. 물론 출판되지 않는 글 분량이야 제 키보다 훨씬 많지만요. 하여간 저는 앞으로도 창의적인 글을 쓰고 끊임없이 시를 쓸 것입니다. 살아 있는 한 생명의 글을 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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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8
  • [언론회 논평] 이승만을 제대로 알아야 바른 역사가 보인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이며,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해야 할 이승만 대통령에 대하여 부정적 프레임을 씌운 대로 잘못된 역사를 믿어 왔다. 또 그렇게 배운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그런 시각으로 후진들을 가르쳐 왔다. 특히 역사를 왜곡하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세력들에 의하여, 매우 부정적으로 전개해 왔다. 그런 가운데 최근 “건국전쟁”(The Birth of Korea)이라는 다큐멘터리(감독 김덕영) 영화가 나와서, 지난 2월 1일부터 전국의 145개 상영관에서 개봉되어 절찬리에 상영되고 있다. 이는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던, 대한민국의 건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에 관한 것을 사실로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하여 거짓된 프레임을 씌워 철저히 부정적인 정치 지도자로 낙인찍어 왔다. 이 영화에서 밝히고자 하는 것도, 이렇듯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 대 가장 부각시켰던 부정적 이미지를 살펴 보면, 90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해온 지도자를 ‘친일파’로 내몰아 왔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초대 내각과 북한 김일성 정권의 내각을 살펴보면, 어느 쪽이 친일 정권이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당시 대한민국 내각의 구성과 출신을 살펴보면, 이승만 대통령, 이시영 부통령, 외무장관 장택상, 내무장관 윤치영, 이범석 국방장관, 법무장관 이 인, 재무장관 김도연, 상공장관 임영신, 무임소장관 이청천 등 내각 17명이 모두 항일, 독립운동가로 채워졌다. 또 국회의장 신익희, 대법원장 김병로 등 행정, 입법, 사법부 수장도 역시 항일, 독립운동가로 세웠던 것이다. 반면에 북한 김일성 정권은 부주석 김영주(김일성 동생, 만주 헌병 보조원) 사법부장 장헌근(중추원 참의)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강양욱(도의원) 문화선전성 부부장 정국은(아사히신문 서울지국 기자) 보위성 부상 김정제(양주군수) 부수상 홍명희(임전대책위 가입 활동) 문화선전성 부상 조일명(학도병 지원 유세 주도) 검찰총장 한낙규(김일성대학 교수, 만주국 검사장) 공군사령관 이 활(일본 나고야 항공학교) 조선노동당 제주4.3사태 주동자 김달삼(일본군 소위) 등 다수의 친일 인사들이 북한 정권의 중요 보직을 맡았다. 따라서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로 몰아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독재자’라는 프레임을 씌워 아주 나쁜 대통령으로 평가절하한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이 의회와 언론의 역할을 제한하지 않았고, 4.19 이후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어느 독재자가 그런 모습을 보였던가? 거기에다 ‘남북 분단의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1945년 9월에 소련의 스탈린에 의하여 남북의 통행과 통신, 우편과 왕래를 일방적으로 차단하였다. 그리고 소련을 지지하는 정부를 북한에 세우기로 하였고,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사실상 북한에서 정권을 먼저 세웠던 것이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서 국내에 들어오기도 전에 계획되고 실행된 일이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남북 분단의 책임이 있다는 것인가? 또 ‘미제의 앞잡이’라고 한다. 6.25때 도망가기에 바쁜 ‘런승만’이라고 비판 한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을 상대로 엄청난 경제 지원을 얻어내고, 6.25 전쟁 중에 미군과 유엔군의 참전을 이끌어 내어, 이 나라를 공산 침략으로부터 지켜냈던 훌륭한 지도자이다. 뿐만 아니라 <한미상호보호조약>을 통해서 오늘날까지도 이 나라의 안위와 국방을 튼튼히 만드는 초석을 단단히 다졌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이 6.25때 자신은 몰래 피신을 하면서, 서울시민들을 일부러 고립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역사적 실제와 진실을 잃어버리면, 마치 심각한 신체 장애를 가진 것처럼, 엉뚱한 방향으로 잘못 가게 된다. 이를 후대에게 바로 가르치지 않으면, 그들에 대한 범죄를 물려주는 것이 된다.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은 ‘더 먼 과거를 돌아볼수록 더 먼 미래를 볼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 미국의 철학자인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반복해야 한다’고 경고하였다. 이 영화를 본 젊은 세대는 학교에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하여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으며, 온갖 부정적인 것들만 배웠다고 한다. 이는 교육이 아니라, 교육을 빌미로 잘못된 이념과 악의적인 역사를 세뇌 시켜 왔음을 알 수 있다. 역사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이미 선배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의 목사이며, 흑인해방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주니어는 ‘우리는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역사에 의하여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우리 대한민국의 건국과 역사는 현재의 우리들이 만든 것이 결코 아니다. 당시를 치열하게, 그리고 극적으로 살았던 이승만 대통령과 선진들에 의하여 세워지고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후대들이 이런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하고, 건국과 초대 대통령으로 국가의 기틀을 쌓아온 순기능을 모두 제거하고, 몰염치한 세력들에 의하여 오직 부정과 왜곡된 역사 몰이에 함몰된다면, 우리 스스로 뿌리와 줄기 없는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초대 대통령이며,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바른 교육이 필요하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계속 비뚤어진 역사 주장을 반복하고, 정직하게 반성하지 못한다면, 오늘의 대한민국 역사를 만든 분들에 대한 배반이며, 다음 세대까지도 역사 앞에 큰 죄인을 만들어 가는 아주 잘못된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하여 바로 알도록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세워가야 하며, 많이 늦었지만 바른 역사를 만드는 기초석을 단단히 놓아가는데 국민적 역량을 모아야 한다. 제대로 된 다큐멘터리 영화 한편에서도 그런 가능성이 보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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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4-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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