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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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저녁 예배를 드리는 어느 교회에 짖궂은 동네 청년들이 장난을 치기로 했습니다. 완벽하게 소품을 준비해서 무서운 마귀의 모습으로 분장을 했습니다. 검은 망토, 뿔이 난 머리, 흉측한 얼굴에 드라큘라 이빨, 삼지창을 들고 교회로 몰려갔습니다. 전기 스위치를 내려 버리자 예배당 안이 캄캄해졌습니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간 마귀의 무리들이 실제 상황처럼 되었습니다.
붉은 빛을 띠고 검은 망토를 쓴 마귀가 앞으로 나아가니 모든 교인이 비명을 질러 대며 겁에 질려 떨고 있습니다. 강단에서 목사가 내려왔습니다. 기도 잘하기로 소문난 권사는 두 손을 모아 마귀 앞에 섰습니다. 목사가 먼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합니다. “내가 언제나 당신 편이었다는 것을 아시지요?” 이는 불신앙을 조롱하는 유머입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다급할 때 본성이 드러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예배시간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는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기도할 때는 청산유수로, 설교할 때는 불을 토하듯이 하지만, 막상 위험이 닥치자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현대인들은 부활이 있느냐, 없느냐? 믿느냐, 안 믿느냐는 고사하고, 모든 일에 신앙인답게 살지도 못합니다. 기독교인들조차도 부활신앙이 능력이 되고, 내 안에서 동력화가 되지 않습니다. 신앙의 내면화보다 처세술이 앞서고, 모략과 패거리 정치가 교단과 연합사업에서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십자가, 헌신, 희생, 배려, 관용, 인내, 온유, 겸손, 자비, 나눔은 오히려 생존에 지장이 된다고 여기는 듯 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는 그 몸과 그 피를 우리의 양식되게 하셨고, 음료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 33, 35). 주님은 천하 만민이 다 먹을 수 있고도 남는 식탁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빈들에서 굶주린 육신을 위해서도 한 사람이 먹을 것으로 오천 명에게 나눠주셨고, 한 분 그 자신이 온 인류가 먹을 수 있는 영적 양식 되게 하셨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요 6:48-51).
그런데 오늘날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은 오천 명이 먹을 것을 한 사람이 먹으려는 것입니다. 나 혼자 먹어야 되니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도 가리워야 되고, 덮어야 하고, 숨기려고 합니다. 그리기 위해서는 함께 하는 사람도 밀쳐 내야 하고, 짓밟아야 하니, 그 어디서도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찾을 수 없고 인정은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싸움들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사회통합은커녕 분열과 갈등만 깊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분쟁과 갈등과 폭력이 교회당 안에까지 밀려들어와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는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병든 자를 고치고 약한 자, 소외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약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에게 애타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가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병든 자에게 부모의 마음같이 애처로운 마음으로 함께 아파하며 다가가려 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좇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사명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교회는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좇아내며 죽은 자를 살릴 능력도 의지도 없는 유대의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에는 부활이 없어도 괜찮을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말씀으로 뜨겁게 되지 아니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부활신앙이 대관절 어디에 필요합니까? 길을 묻는 자도 없고, 길을 인도하는 자도 없으니 주님은 통곡하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아 ~ 한국교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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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메세지/어디에 부활이-유 종 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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