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종교사상가 「한밝 변찬린」
2018/03/08 13:4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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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풍류사상과 기독교를 선맥사상으로 융합한 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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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988년 『한밝문명론』(지식산업사)을 출판한 직후 ‘邊燦麟’(1934~1985)이란 분을 처음 알게 됐다. 이 분의 호가 ‘한밝’인 것이 인연이 된 것 같다. 『성경의 원리』 그리고 『禪, 그 밭에서 주은 이삭들』을 그 무렵부터 접할 수 있었다. 은퇴 한 후 서재 정리할 때와 미국으로 책들을 가져 갈 때에도 빼놓지 않고 꼭 챙긴 책이 이 두 책이다.
2017년 10월 저자로부터 『한밝 변찬린: 한국종교사상가』(한밝은 편의상 ‘한밝’으로 표기함-편집자)를 받게 됐다. 30년 전 그 변찬린, 그리고 앞으로 쓰려고 하는 단신학에서 반드시 다루려고 했던 그 분에 관한 책이었다. 그것도 잠시 미국에서 나와 머무는 동안 이런 만남을 갖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고 나로 하여금 책을 쓰도록 박차를 가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아직 우리 귀에 생소한 변찬린은 누구이고 그의 주 사상은 무엇인가?
변찬린은 그의 주저 『성경의 원리』를 쓰고 나서 “옛날 원효와 고운과 퇴계와 율곡에게 지혜를 주셨던 아버지께서 제게 번갯불을 주셨고 청자 빛 비색의 하늘을 향해 개안시켜 주시고 본래의 대도와 풍류도의 선맥의 하늘을 개천(開天)시켜 동방의 지혜로 『성경원리』라는 각서를 쓰게 했음을 감사한다”고 적었다. 저자의 글 안에 인용된 변찬린의 이 말은 가장 감동을 주는 말이다. 기독교 성경 해석서를 쓰고 나서 변찬린이 한 말은 한국 어느 신학자의 글에서도 읽을 수도 볼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이나 어거스틴이나 아퀴나스 그리고 현대 신학자들, 칼 바르트나 폴 틸리히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고, 우리 토속 사상가들이 변찬린의 뇌리 속에 번갯불 같은 섬광을 던져 주었다는 것이다.
그가 짧은 생애 동안 쓴 저술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65년부터 구도의 영성일기 『禪, 그 밭에서 주운 이삭들』(1988), 유언시집 『禪房戀歌』(1972), 또한 성경을 조직해석학적으로 논술한 『성경의 원리(상)』(1979), 구약사건을 해석한 『성경의 원리(중)』(1980), 신약사건을 해석한 『성경의 원리(하)』(1982), 요한계시록을 성구마다 해석한 『요한계시록 신해』(1986)등의 저술이 있다.
변찬린의 신학 사상은 “성경은 선맥이다”로 요약된다. 저자는 이 요약에 근거해 무려 800여 쪽에 이르는 장문의 글을 통해 변찬린 사상을 고찰하고 있다. 이 책은 5편으로 구성돼 있지만, 크게 보면 세 부분으로 구별할 수 있다.
첫째 부분에서는 변찬린의 종교적 생애를 다룬다. 변찬린은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인물이지만, 유영모, 함석헌, 배용덕 등 당대 선각자와의 교류, 방대한 동서양의 종교사상을 회통한 후 세계 경전을 새롭게 해석하겠다는 ‘한밝경전해석학’을 구상한다.
둘째 부분에서는 변찬린의 사상을 ‘한밝사상’으로 명명해 체계화한다. 저자는 변찬린을 그리스도교 계통의 종교연구가로 자리매김하지 않는다. 변찬린은 세계 종교경전과 유불도 사상을 회통한 다음 독창적인 사유체계를 전개한다. 한밝사상은 영성우주와 시공우주가 서로 교류한다는 장대한 한밝우주역사관을 바탕으로 성경의 부활사상과 동방의 신선사상을 이해지평에서 융합시킨다.  
셋째 『성경의 원리』와 한밝성경해석학의 체계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한밝성경해석학이라는 성경해석의 체계로 범주화하여 변찬린의 『성경의 원리』를 독자에게 소개한다. 한밝사상과 한밝성경해석학은 실존적 인간의 구도자적 정신의 회복, 종교간의 대화, 사회변혁운동을 추구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으며, 이를 곧 축 시대의 사유체계를 통섭하고 새로운 문명의 사유체계의 대안적 사유로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이호재 교수는 수십 년의 연구를 통해 한밝 변찬린을 이번 대작으로 복원시켰다. 특히 변찬린이 한국을 종교혁명의 기지로 삼아, 이를 인류역사의 새 문명을 만들겠다는 처절한 구도의 의지를 가진 영원의 구도자이자 종교사상가라는 측면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변찬린은 한국의 풍류사상을 신학의 지평에서 거론한 최초의 사람이다. 혹자들은 유동식이 풍류신학의 선구자인 것처럼 알고 있지만, 저자는 변찬린이 “한국의 풍류신학을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유동식의 풍류신학’과 유동식보다 몇 년 전에 이미 풍류사상에 주목해 한밝성경해석학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성경의 원리』를 썼다”(253~310쪽, 569~602쪽 참조)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선맥과 기독교의 부활사상을 상호 교차적이며, 융합적으로 이해한 것은 변찬린이 세계 종교계에서 최초라고 평가된다. 어느 누구도 변찬린과 같이 “성경은 선맥이다”라는 논지를 초지일관 주장하지 못했다.
변찬린과 동시기에 원광대 유병덕이 한국의 선(仙)과 무(巫)를 구별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유병덕에 의하면 지구상 위도가 33~43도 사이의 지역에서 무(巫)가 선(仙)으로 변한다고 했다. 열대(熱帶)도 아니고 한대(寒帶)도 아닌 지역에서만 무가 선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무란 흔히 말하는 샤머니즘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무는 빙의 같은 현상을 통해 ‘신내림’을 수의적으로 받는 것이지만, 선은 스스로 안에서 ‘신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선은 각고한 경험 즉, 고행, 기도, 금식 같은 것을 통해, 내면에서의 깨달음을 통해 신이 안에서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무와 구별한다.
선은 그 성격상 철학을 그 안에 태동하고 있었다. 선층은 차축시대 철학이 등장하기 직전 그리스의 호머시대, 인도의 리그베다시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직전, 인간이 신과 직접 통로를 열어 놓고 있을 때다. 그러나 차축시대의 공자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인간이 신과 직접 교류하는 것을 금했으며 박해하고 철폐까지 했다. 이것이 선층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차축시대 보다 500여 년 후에 등장한 예수의 언행은 선과 무층의 것을 다시 가져오고 있었다. 이 점에서 변찬린은 기독교를 선맥으로 본 것이다. 예수의 언행과 행각은 거의 선맥에서 이른바 신선이라고 하던 인물들과 유사해 보인다. 병든 사람을 기적으로 고치고 무엇보다 산 사람이 그대로 산몸으로 승천할 수 있는 데 이를 우화등선(羽化登仙)이라고 한다. 길선주 목사가 선맥 종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 만큼 선맥이 기름이라면 기독교는 불과 같다.
그러면 왜 한국에서만 유독 기독교가 초기부터 지금까지 강세인가에 대한 의문이 해소된다. 그것은 선맥이 굵게 자라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변찬린의 선구자적 통찰이다. 한국에서 선맥이 강세인 이유는 차축시대 인간의 합리적 자아가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그 이전의 무와 선을 말살하거나 탄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상 어느 곳보다 선맥이 그대로 유지됐고 기독교가 도래했을 때 이웃사촌이나 만난 듯이 한국문화와 기독교는 말 그대로 찰떡궁합이었다. 이 점을 변찬린은 천재적으로 포착한 것이다.
변찬린은 한국적 화합에 의해 기독교를 통해 ‘선맥’을 다시 찾으려 했다.  『성경의 원리』 상권은 신선사상인 도맥론과 불교의 윤회론을 언급하고 있다. 이 말은 변찬린이 선맥을 통해 쉽게 차축시대의 불교나 도가사상과 화합시켰음을 의미한다. 이 점에 대해 저자는 “특히 성경에 숨겨져 있던 ‘윤회론’을 제시한 것은 그리스도교 신학 체계가 발굴하지 못했던 연구영역을 개척한 공로”라고 평가했다.
변찬린은 인류 문명사에는 두 가지 맥이 흐르고 있는데 하나는 살아서 우화등선하는 선맥(僊脈)과 죽어서 시해선해 우화등선하는 선맥(仙脈)으로 분류한다. 이 두 종류의 구별은 변찬린 사상의 등록표와도 같다. 전자인 선맥(僊脈)은 단군, 최치원, 에녹, 엘리야가 간 영성통로이며, 후자인 선맥(仙脈)은 모세와 예수가 개척한 영성통로로 이해한다. 이런 측면에서 변찬린은 현 세계종교의 신앙체계는 피안신앙이라고 비판하면서, 동방의 신선사상과 풍류사상이 바로 영생신앙이라고 논변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지나 영성시대를 조명하면서 세계 경전 해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변찬린의 풍류도맥론은 영성시대의 대안적인 사유체계로 세계 학계에 내놓을 수 있는 훌륭한 종교적 자산이다.
저자는 종교학과 신학의 학제간 교류, 한국 종교사상가의 기독교 신학이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충분히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변찬린의 사유체계’로 증명해냈다. 앞으로 한국의 사상이 세계 학문과 교류할 수 있는 교두보의 역할을 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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