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초창기의 역사 뿐 아니라 일제 치하의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대변하고 있는 지리산 왕시루봉 선교유적지는 한때 선교사들의 여름 휴양 별장이라는 잘못된 오명을 쓰고, 일부 사회로부터 배척을 당해야 했으나, 유진 벨 선교사의 후손인 인요한 박사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그 역사적 가치가 교계에 알려져, 늦게나마 왕시루봉에 대한 본격 연구에 착수케 됐다.
이후 하동, 구례, 곡성 등 해당 지역 기독교계가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적극 나섰으며, 중앙 교계에서는 한국교회언론회(대표 유만석 목사)를 중심으로, 고 안금남 목사 등 주요 목회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보존연합 이사장을 맡고 있는 소강석 목사(예장합동 부총회장)는 선교 유적지에 대한 연구 뿐 아니라, 물심양면으로 다양한 지원을 통해 큰 기여를 해 왔다. 현재 보존연합은 문화재청과 함께 선교 유적지에 대한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날 협약식에서 인사를 전한 보존연합 공동이사장 인요한 박사(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는 “낯선 땅에서 자녀를 잃고, 가족과 친구를 잃으며, 건강도 재산도 귀히 여기지 않았던 선교사들의 정신을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면서 “자신들의 생명과 정신을 모두 내어준 영성의 장소인 왕시루봉 선교사유적지의 보존은 너무나 마땅할 것이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왕시루봉 선교유적지를 선교사들의 단순 피서지라고 비하했지만, 인 박사 등 선교사 후손과 인근 주민들의 증언으로 당시 조선의 전염병에 대한 면역이 없던 선교사와 가족들이 풍토병을 피하기 위해 고지대에 마을을 구성했음이 밝혀졌다. 실제 당시 조선의 전염병에 의해 사망한 선교사와 그의 가족이 약 67명에 이른 것으로 확인됐다.
보존연합 이사장 소강석 목사는 왕시루봉 선교유적지가 이념, 지역으로 갈라진 국민들의 화합과 나아가 남북통일의 바탕이 되어주기를 기대했다. 소 목사는 “오랜 역사 속에 잊힐 뻔한 왕시루봉이 인요한 박사님의 노고와 고 안금남 목사님의 헌신, 오정희 상임이사님의 열정으로 점차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면서 “이 분들이 아니었다면 선교유적지는 역사희 흙무덤 속에 묻혔을 것이다”고 감사를 전했다.
이번 협약에 함께한 애터미의 박한길 회장은 과거 해외 선교사들이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동남아와 인도 등 저개발 국가에 학교와 병원을 세우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며, 선교사들의 정신을 잇는데 함께하고 있다. 박 회장은 이날 협약에서 3억원을 선교유적지 보존활동을 위해 쾌척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별히 이날 행사를 위한 전 국무총리 정운찬 총재(KBO)와 구례군 김순호 군수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정 총재는 “왕시루봉 선교유적지는 기독교 뿐 아니라 민족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우리의 유산이다”면서 “선교사들이 한국교회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개화와 계몽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민족사적 의미를 널리 알리고 보존해 후세들을 위한 교훈의 현장이 되도록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순호 군수 역시 “선교유적지는 구례의 소중한 자산으로 이 땅에 오신 선교사들의 믿음과 희생이 남아있는 장소다”면서 “왕시루봉의 등록 문화재 추진이 완료되고, 우리 군의 관광자원의 한 축이 되어, 선교유적지의 가치가 더욱 빛나게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또한 앞으로 선교사 유적지의 체계적인 연구와 스토리 작업을 통해 이를 선지순례지로 자원하는데 함께 협력하기로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