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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호)벽
    벽 박 수 민지친 몸으로 돌아올 때너의 따뜻한 미소로 맞아 주고어이없는 실수로 괴로워하면말 없는 진심으로 격려를 했지병마의 고통에 시달릴 때도가까이서 묵묵히 감싸 주고무릎 꿇고 기도할 때 지켜 주었지절박할 때 함께하는표정 없는 말 없는 고마운 친구야너의 따뜻한 우정 잊을 수 없구나나의 부끄러운 삶 탓하지 않고조용히 바라만 보는 너의 심성이너무도 고맙구나내가 세상 떠나는 자리에서도포근히 전송해 줄 미더운 친구야나는 너를 생각하며그분의 은혜를 감사한다우리가 사는 동안 친구라는 존재는 참으로 중요하다. 친구란 유치원 때부터 청소년기 대학교 때 친구, 사회에서의 친구 등등 많은 친구가 있다. 그 중에 속내를 털어 놓기도 하고 언제라도 만나고 싶으면 달려가는 친구가 참된 우정의 친구라고 할 수 있다.화자는 이러한 친구를 두고 있다. 지치고 힘들어 괴로울 때 병마로 고통 당할 때 진심으로 가까이서 지켜주고 격려해준 친구. 이러쿵 저러쿵 말은 안해도 옆에만 있어도 힘이 되는 든든한 친구. 언젠가 화자가 이 세상을 떠날지라도 포근히 전송해 줄 미더운 친구 그러한 친구를 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끝을 맺는다.이 시를 읽으면서 나에게도 벽처럼 든든하고 울타리 같은 친구가 있는가 되물어본다. 단 한 명이라도 그러한 친구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고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한다.이 시에 담겨져 있는 참된 우정은 혼자가 아닌 둘과의 참된 관계가 형성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시의 화자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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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2-25
  • (김지호)천국 시민
    천국 시민 육 명 길요구보다는순종을열정보다는믿음을성취보다는사랑을주장보다는양보를 하는 자그리스도인이라면 나 자신이 과연 천국시민일까 라고 자문할 때가 있다. 또한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언행을 보면서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을 평가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천국시민으로서의 자질이란 자신의 개인적 잣대의 눈이 아닌 것이며 말씀으로 비추어 봐야 할 일이며 함부로 이러쿵저러쿵 판단할 일은 아니다.시인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천국시민이란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하나 하고 고민 해 본다. 우리는 살면서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기를 요구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요구하는 자신은 실제 삶에서 올바른가 자문해 봄직도 필요하다. 남한테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기 보다는 자신이 먼저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있는가 또한 남을 사랑하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먼저 채우려고 달려왔는가열심히 하겠다는 열정만 가지고 가다보니 헉헉대고 믿음을 상실한채 살아 온 것은 아닌지 자기 고집과 의견만이 옳다고 주장하다보니 양보의 미덕은 사라져 냉냉하게 살아 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고 있다.이러한 과정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를 되돌아보며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올바른 천국시민의 삶이란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까 축약된 운문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읽는 순간 강렬하게 회개의 심령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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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2-19
  • (김지호)길
    길 김 정 자날마다 달마다오던 길 가던 길길은 길인데마음이 밝은 날은가야 할 그 길이꽃길처럼 환하다가이 마음에안개 자욱한 날이찾아들 때면가야 할 그 길이어둠보다 더 깊은미로가 된다사람의 마음이란 자기 자신도 콘트롤 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고 악보와 같아 오르락 내리락 할 때도 있다. 경사스런 일이 있는가하면 슬플 때도 있다. 기분이 엎 될 때가 있는가하면 기분이 다운 될 때도 있다. 특히 마음이 힘들 때 누군가 그러한 마음을 알아준다면 좋겠건만 신앙을 하는 사람들조차 깊은 수렁에 바질 때가 있다이 시에서 화자는 늘상 오가던 길을 더올린다. 똑같은 길을 오가면서 화자는 마음의 상태에 다라 길을 걷던 마음을 표출하고 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기쁨이 충만하여 발걸음이 가볍다고 한다. 얼마나 기분이 상쾌하면 꽃길처럼 느껴질까. 아마도 바람에 굴러가는 꽃잎하나도, 길가의 잡초도 모두가 아름답게 보였나보다. 그러한 기분좋은 날이 매일 이어지면 좋겠건만 화자는 때론 마음에 안개가 자욱하여 기분이 다운될 때도 있었다. 오죽하면 “어둠보다 더 깊은 피로”라고 했을까. 상처가 너무 깊거나 분노가 솟아오를 정도로 속이 상하거나 누구한테도 하소연 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픈 일이 있을 때 화자는 어떻게 극복했을까여기서 화자는 해결법을 제시하지 않고 독자에게 맡기고 있다. 아마도 신앙인으로써 기도하면서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해결법을 찾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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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2-04
  • (김지호)청지기의 사명
    청지기의 사명 김 성 녀하나님이 맡겨주신 청지기의 사명을지혜롭고 슬기롭게 행케 하여 주소서마음속에 품은 믿음 귀히 간직하고서주인님의 기뻐하는 뜻을 따라 해야 하리착하고도 충성스런 청지기가 되어서주님 맘에 합한 자로 인정받기 원하네많은 고기 뛰노는 곳에 그물 던지러 가세깊은 바다 겁내지 말고 열심히 던져 보세힘들어도 쉬지 말고 기도하며 던지면그물 속에 잡힌 고기 우리 주님 거두시리모든 그리스도인이 청지기라는 사명에 대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할까. 대부분이 청지기의 사명을 잘해야지 라기보다는 그냥 주어진 직분에만 습관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시에서 화자는 청지기의 사명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1연에서 “하나님이 맡겨 주신 청지기의 사명”이라 언급하며 계속해서 그 사명을 종의 입장에서 주인이 기뻐하도록, 착하고 충성스런 청지기를 언급하다가, 4연에서는 청지기의 사명에서 전도라는 사명을 언급한다. 예수님의 제자 중 베드로와 안드레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던지라 말씀하신 쪽으로 던졌을 때 많은 고기를 잡았다. 전도라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한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과정에서 내 의지대로만 하려하면 힘든 것이 더욱 힘들어지고 결국 포기하기가 쉽다. 그러나 쉬지 않고 구도자를 위해 주님께 기도하며 예수님의 지시대로 열심을 낸다면 거두어주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시라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아마도 화자는 평상시에 전도에 대한 열정이 많거나 많은 영혼을 전도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인가보다. 수많은 청지기 사명이 있지만 우리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대해 열심을 낸다는 것이 바쁜 사회속에서 쉽지는 않다. 그러나 “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라는 말씀처럼 영혼을 위해 주님의 방법대로 시도한다면 좋은 열매를 거둠으로 주님께 영광돌리는 청지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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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21
  • (정신재) 민들레 홀씨
    민들레 홀씨 김 철 교 노오란 꿈이 옹골차게 영글면이리도 가볍게 날 수 있는 것을머문 듯또다시 바람이 불면미련없이 자리를 턴다세월의 무게를 다 내려놓고바람에 실려 어디로 간들거기가 고향이 아니겠느냐주님! 오늘도 저희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은혜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지요.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저희가 새나 물고기로 태어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택하실 때에도 하나님의 뜻에 따르셨지요.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어부들이 그물을 씻고 있을 때에 주님이 시몬의 배에 오르셨지요. 사람들이 몰려들므로 예수님은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아서 말씀을 가르치셨지요.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말씀하셨지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 베드로가 대답하였지요.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 5:5). 그리하여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가 되었지요. 베드로가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도움을 청하여 두 배에 물고기가 채워져 잠기게 될 정도였지요. 베드로가 엎드려 고백하였지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 그러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지요.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눅 5:10). 그리하여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랐지요(눅 5:11).주님! 저희가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주님을 따르렵니다. 주께서는 저희의 달란트를 아시오니, 그 달란트를 통하여 주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저희의 믿음이 “옹골차게 영글”었을 때 저희는 주님 뜻에 의지하여 어디든지 떠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신다면 “바람에 실려 어디로 간들/ 거기가 고향이 아니겠”습니까. 저희의 마음은 “민들레 홀씨”가 된 기분입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 한들 주님이 원하시는 곳이 저희들의 고향이겠지요. 세상의 미물도 다 주님이 주관하시는데, 하물며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저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여 주신 주님의 말씀을 소홀히 할 수는 없지요. 주 뜻대로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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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12
  • (정신재)목련꽃
    목련꽃 임 원 재바스락바스락책갈피 속에서엘리어트의 4월이알몸으로 일어서는패러독스차라리비릿한 살냄새 역겨워속옷까지 벗어던진동토의 지심 외발로 서서그날의 그리움에환호하는비로소개벽하는 날속살 들어낸순백의 꽃잎으로볼 비비며사랑으로 부활하라.“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막 11:15-18).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안은 하나님의 처소입니다. 우리 안이 더러우면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회개하고 그 안에 사랑이 흘러넘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하십시오.주여! 내 안이 더러웠사오나 주님이 깨끗하게 하셨사오니, 이제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하여 주소서. 사랑의 꽃이 피게 하소서. 성령이 함께 하셔서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소서. 주님의 생명수로 사랑이 풍성하게 자라도록 하소서. 의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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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30
  • (정신재)금일봉
    금일봉 오 운 교아련하게 떠오르는 시골 운동회본부석 텐트 앞자락 긴 끈 밑으로주렁주렁 매달려 꼬리 흔들던 찬조금동네 잔치 마당 선지국밥 대금이었을까주민 한마음 어울려 포식하던 날이었다.종종 봉투 금액으로 갈등하는 일상입이 쩍 벌어질 액수 건네주고 싶지만분수 지키려면 가늠하기 만만치 않아서순간순간 갈피 못 잡고 고민하기 일쑤다.드러내기 좋아하는 유력 인사들선한 기부금 명목 호명만 요란하며금액란을 호방하게 밝히지 못하는 속셈순수한 사랑만은 균형 감각 잃지 않았으면.“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5).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사랑은 주님이 피 흘려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온 인류를 품에 안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회복하였으며, 영생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인이라 평가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몸소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부활의 길을 열어 주었고,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우리는 의로운 행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게 처신할 수가 있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절제하는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어떠한 역경도 주님이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리라는 믿음으로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가 있습니다. 주님을 찬양하며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심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님의 순수한 사랑을 본받지 못하고 사랑을 변질시키는 이들이 있습니다. 정치적인 야심 때문에 기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남에게 내세우기 위하여 사랑하는 척 흉내를 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시인은 시골 운동회에서 이와 같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선한 기부금 명목 호명만 요란”합니다. 그들은 “금액란을 호방하게 밝히지 못하는 속셈”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민이 하나 되는 “동네 잔치 마당”이 퇴색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의 사랑이 그 본래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요. 주님이 주신 우리들의 순수한 사랑이 회복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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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19
  • (정신재) 고향에 가면
    고향에 가면 목 영 민고향에 가면 산에 새소리 들리고외양간에 소가 여물을 먹고똥개는 툇마루에 낮잠을 자고뒤뜰에 암탉은 알을 낳았다고 울어댄다할아버지는 장에 가서 친구 만나 곡차 드시고거나하게 취하셔서 또 늦으시나 보다금년 봄에 처마 밑에 둥지를 튼 제비는남쪽 나라로 떠난 지 오래고 뒷동산에 대추나무올해도 가지가 휘어지게 달려 있다길 건너 산에 밤나무에는 탐스러운 밤이 주렁주렁달려 있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버선 발로 나와 반갑게 맞으시고씨암탉 잡아 주실 것만 같은데이미 저승에 가신 지 오래다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고향 언제나가고 싶은 고향 내 고향이다하나님의 자녀에게 고향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인간은 누구나 다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워하지만,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곳은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는 곳이지요. 고향에 비할 바가 아니지요.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주님을 통해서 갈 수 있는 나라가 그곳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행 2:28). 이곳은 믿음이 행함과 함께 온전하게 될 때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약 2:22). 이곳에 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 합니다(에 2:22).위 작품에서 화자는 고향에 가고 싶어합니다. 그곳에는 정들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고, 소와 개와 암탉과 제비가 평화롭게 있는 곳입니다. 그리하여 정든 사람들이 정을 담뿍 담아서 나누어 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화자는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고향 언제나/ 가고 싶은 고향 내 고향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보다 더 가고 싶은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는 곳입니다. 진정으로 가고 싶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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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11
  • (정신재)병원
    병원 원 응 순나를 외면하고 너를 마중하는괴로운 표정이 방마다 걸리고빠알간 의식이너울너울 춤추듯 왕래하는공포를 주사하고-,사늘한 미소의 언저리나를 헌신하는모순 속에희생을 투약하는 창구.항시 나를 외면하고너를 마중하는밀림지대,거래의 ‘메스’가 번쩍이는수술대 위,환자의 아픔이 꿈틀거리는시장市場,상냥한 점원의 손길이독점하는 ‘디파트먼트’,항시나를 외면하고너를 마중한다.“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행 3:6). 베드로가 성전 입구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칠 때 한 말이다. 위 시에서 화자는 “나를 외면하고/ 너를 마중”하면서 치유를 간구하고 있다. “너”는 의를 함축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은 의로써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기를 원하신다. 의를 말씀하시는 진리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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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04
  • (정신재) 버리기. 9
    버리기. 9 양 왕 용그대의 명령 따라물 위를 걸어가는베드로에게바람으로 다가온무서움.끝내 물 속으로 빠져갈 때믿음이 적은 자여왜 의심하였느냐고꾸짖으며 건져 내신그대의 말씀대로무서움과 의심 버리기.이 세상의 온갖 바람과 어두움도그대의 말씀 거역하지 못하는 법.말씀으로무서움과 의심 모조리 물리치기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한 노숙자가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 그 문 앞에 섰습니다. 문지기가 물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너의 지금까지의 행적 점수가 1000점이 되어야 한다. 네가 한 행적을 말해 보아라.” 노숙자는 자신 있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동료들을 위해서 폐휴지를 팔아 봉사하였습니다.” “그건 50점밖에 안 된다.” “주일이면 교회에 가서 성가대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것도 50점이다. 아직 1000점이 되기에는 멀었다.” “청빈하고 온유하게 살았습니다.” “그것도 50점이다. 아직 모자란다.” 노숙자는 답답하고 막막하였습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 이제까지 공들였던 것이 허사가 될 판이었습니다. 그는 안 되겠다 싶어 마지막으로 주님께 매달렸다. “주님! 도와 주십시오. 제가 주님만 믿고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제가 의인의 반열에 들어 의롭게 살았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였습니다.” 그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제서야 문지기가 말했습니다. “바로 그거다. 그게 850점이다. 이제 들어가라.”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오로지 나를 지으신 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할 도리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빛과 소금이십니다. 그분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는 기회를 주셨고, 죄인에서 의인으로 거듭나게 하시어 우리가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믿음대로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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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시선
    201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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